1. 가만 있는 게 돕는거야
기쁘고 설레고 행복한(?) 명절, 저는 누구와 함께 집안일을 하고 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교육과정에도 말입니다.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하는거라고 나온답니다. 엄마와 아빠, 오빠와 동생, 할아버지와 삼촌, 할머니와 고양이까지 다같이 말이죠. 아홉살 짜리라도 밥상에 수저를 놓는다거나 분리수거용품을 내놓는다거나 화분에 물을 준다거나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배웁니다. 작은 아들 2학년 때 학부모 공개수업에서도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와 아빠가 하는 집안일을 나눠보고 누가 더 많이 하는지 확인해 보고 자기가 할 일을 찾아보는 활동이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의 가정에서 70%의 집안일을 엄마가 하고 나머지를 식구들이 나눠서 한다고 나오더군요. 실제로는 엄마의 비중이 8, 90% 일겁니다.
2학년 아이들에게 수업 중에 물었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똘똘한 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듭니다.
"옳지, 한 번 친구들한테 발표해볼까요?"
"우리 엄마가, 가만 있는 게 돕는거랬어요!"
아, 해맑은 우리 어린이, 오늘도 큰웃음을 선물해주는군요.
맞아요, 제발 사고치지 말고 꼼짝 말고 앉아 있으세요, 그게 엄마를 돕는거에요. 짝짝짝.
이럴 순 없잖아요. 서투르고 실수투성이라 부모가 더 힘들어지더라도, 어른이 가르쳐주고 도와주면서 집안에서 해야할 일을 같이 담당하게 해야죠.
그런데 그러려면 엄마가 여유가 있어야 해요. 뭐, 엄마의 성향이나 기질도 영향이 있겠지만 엄마가 힘들면 쉽지 않아요. 누구라도 얼른 일 끝내고 쉬고 싶잖아요. 뒷처리까지 마무리하려면 결국 엄마가 말랑해야한다는겁니다. 엄마가 말랑하려면 누구 역할이 중요할까요? 그렇죠, 아빠죠. 교육을 위해 집안을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도 아빠가 왠만큼 감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니까요. 굳이 같이 부엌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음식을 하면 청소와 정리는 알아서 아빠가 하면 됩니다. '집안'일이잖아요. 집안에 사는 사람들이 다 같이 해야죠.
2. 무슨 반찬? 고기 반찬!
명절이 끝났네요. 저는 양가 모두 차례를 지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모여 먹어야 하니 평소보다 정성껏, 많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생선도 두 종류 굽고, 고기도 찜에 불고기에 구이, 육전까지 고루 만들었습니다. 차려놓고 보니 대부분이 고기네요. 밥상 위에 온갖 육류가 가득합니다.
옛날에야 먹을 게 귀하고 육류는 더 귀해서 명절때야 만들어 먹었다지만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은데 고기반찬이 넘쳐납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물이나 채소류는 잘 먹지 않고 고기반찬으로만 밥을 먹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집은 제가 요리를 잘 못해서 고기를 자주 먹어요. 손질도 필요 없고 간을 볼 필요도 없으며 굽기만 하면 다른 반찬 없어도 밥 한끼 편히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꾸 고기를 먹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고기를 좋아해요.
오늘도 남은 명절음식들과 넘치는 고기들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책을 읽던 중
"우리가 먹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지구를 구할 순 없지만, 먹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 구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우리가 날씨다,/조너선 사프란 포러/ 민음사)
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뒤늦게 기후위기와 축산, 육류과소비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어요. 명절 음식에 고기 하나만 줄였어도 지구환경과 기후위기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각 개인들의 이런 소박한 질문과 행동들이 변화를 만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뒤늦게 하면서 기후정의를 위해 내 처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봤습니다.
내일은 남은 나물 잔뜩 넣고 고추장 넣어서 비빔밥을 먹어야겠습니다. 냉장고 야채칸에서 시들어가는 아이들도 좀 꺼내서 지지고 볶아보렵니다. 더 힘들고 더 불편하지만 더 행복한 길을 용기있게 걸어보겠습니다.
3. 돼지를 잡다
친정엄마가 열심히 돼지를 키우셨어요. 올해 손주 둘이나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하거든요. 그래서 1년 동안 열심히 동전이나 지폐가 손에 잡힐 때마다 돼지한테 먹이셨어요. 드디어 설날, 다 모여 저녁을 먹고 나서 두 아이를 방으로 부르셨습니다.
"자, 돼지 잡자!"
그리고는 저금통을 열어서 두 아이더러 모두 얼마인지 세라고 시키셨죠. 세상에 두 아이 모두 입이 완전 헤벌죽 벌어져서는 신나게 돈을 세더라고요. 천원짜리를 손에 가득 쥐고 만원짜리 오백원 짜리 따로 모아 돈을 세는데, 엄청 행복해보이더군요. 역시 짜릿한 자본의 맛!
다 셌더니 세상에 거의 50만원이더라고요. 공평하게 둘이 나눠가지라고 했더니 두 녀석이 23만 얼마를 가지고 일어서는거에요. 저와 동생은 동시에 벌떡 일어섰습니다.
안된다, 너무 거금이다. 할머니가 애써 모으신 돈을 이렇게 마구 나눠주시면 애들 버릇나빠진다, 온갖 잔소리들을 퍼부어댔습니다. 할머니는 강경하게 내가 주겠다고 했는데 왜 엄마들이 나서서 그러냐며 방어를 펼치셨습니다만, 애들 돈을 뺏는 엄마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선물 드리는거라 생각하고 오만원씩을 도로 뺏어서 돼지한테 넣어줬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안되는 건 안된는겁니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라며 항변하며 동시에 삐져버린 두 아이를 달래느라 고생한 건 뒷 얘기고요, 어쨌거나 재밌는 이벤트였습니다. 돼지야, 내년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