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어린 직작동료도 대학생 학부모, 작은애가 고등, 그런데 오십인 저는 아직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녀요.친구들이 애들 대입 상담 다닐때 어린이집 상담가서 '아이가 오이를 안 먹네요 어머니', 라는 말을 듣고 오던 때에 비하면 많이 키우긴했지만 아직 멀었죠.
아이는 올해 6학년. 얼마 전에 졸업앨범 사진 찍고 온, 체육시간에 피구하느라 다리가 힘들었다고 엄살부리는, 아침에 거울 앞에서 드리이기로 한참 머리를 꾸며보는, 보통의 남자아이입니다.
둘째라 부모 눈에는 숨만 쉬어도 이쁘고 귀엽죠. 객관적으로 봐도 잘 하는거 하나 없지만, 자기도 엄마아빠가 자기에게 약하다는걸 알아서 엄청 뻗댑니다. 엄마 아빠가 좀 만 혼내는 것 같다 싶으면 말도 안되는 말로 부모를 협박합니다.
-나 내일 학교 안 가.
-안가면 어쩔건데?
-나 내일 시험 안 봐
-무슨 수로?
대개 이런 어이없는 투정은 상대도 안하고 받아칩니다만, 한 순간에 무너지는 협박이 있습니다.
"나 엄마한테 뽀뽀 안 해."
아, 이건 반칙이죠. 이러면 바로 쭈그러들면서 뽀뽀하자고 아이한테 달라붙습니다.
어제는 뜬금없이 잘 준비하다 말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 앞으로 좀 더 까다로워져야겠어."
"무슨 소리야?"
"요즘 엄마한테 너무 애정표현 많이 한 거 같애."
이 아이가 이토록 고자세인 이유는 순전히 엄마 탓이겠지요. 압니다. 누울자리 보고 다리 뻗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고 다 엄마가 허용하니까 저러는거겠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두 팔 벌려 아이부터 껴안습니다. '엄마 충전~~~'하면서요. 아이의 온 몸을 마주 안고 아이 냄새를 맡으면 온 몸의 긴장이 풀립니다. 출근하면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사르륵 녹는 게 느껴집니다. 아, 이게 긴장이 풀린다는 거구나. 알콜에 취했을 때나 느끼는 호르몬의 변화가 단순히 아이를 품에 안기만 했는데도 일어납니다. 몸과 마음의 힐링. 명상이나 아로마, 마사지가 없어도 릴렉스가 됩니다.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상태가 되는겁니다. 그래서 아이를 '엄마 충전기'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엄마가 퇴근하고 오면 꼭 충전해줘야한다고.
6학년이나 된 사춘기가 시작되는 남자아이가 엄마랑 꼭 껴안고 있는 게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도 5초는 참아줍니다. 엄마가 안고 녹아내릴 때 무표정한 얼굴로 숫자를 셉니다. 일, 이, 삼, 사, 오, 됐어. 5초만 더 해달라고 아직 충전이 덜 됐다고 징징대면, 할 수 없다는 듯 알았어 5초만이야. 하고 또 5초동안 안아줍니다. 그게 또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러면 또 힘을 얻고 얼른 간단히 정리하고 저녁준비를 합니다. 그 사이에 아이는 엄마 핸드폰도 잠깐 하고 놀지요.
늦게 결혼해서 노산으로 아이를 낳아 체력으로나 심력으로나 힘들어하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제가 퇴직하고도 아이가 학생일거라 경제적인 부담도 큽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없었다면 제 삶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생각하면 자식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늙은 엄마라 친구들 보기 민망한 순간도 있겠지요. 제가 아이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니 그만큼 더 사랑을 퍼부어주는 수 밖에요.
그런다고 제가 작은 아이를 더 귀애한다거나 편애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 아이와도 주고받는 둘 만의 관계가 있습니다. 큰 아이에게서는 큰 아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다른 위로가 있거든요. 작은 아이를 통해 제가 좀 더 말랑해진다면 큰 아이를 안으면 더 굳건해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버티게 되는 이유가 되니까요.
늙어서 키우려다 보니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고생이 말도 못하지요.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요. 그런데 또 그 육아의 경험들이, 아이의 사랑이 저를 엄마로, 인간으로 다시 만듭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경험들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고 풍성하게 만드니, 사실은 아이들이 제 스승이고 은인입니다.
오십인데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를 키워요. 남들에게 안쓰러워 보일 수 있지만, 제게는 참 다행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아이가 또래 보다 이른 나이일 때 제가 아이 곁을 떠나겠지요. 그 때까지 열심히 사랑할겁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 가득 담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