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죽여도 사람은 살린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지나친 호기심은 위험하다는 뜻을 지닌 서양의 속담이다. 왠지 스릴러 영화 제목으로 어울릴 법한 느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호기심이 강한 인물은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 적이 많다. 덮어두려는 일을 굳이 캐내거나, 사람의 오래된 상처를 헤집는 이기적인 호기심, 눈치 없이 여기저기 끼어들어 사건을 만들어내는 호기심, 아니면 너드처럼 생활지능은 떨어지고 지식적으로 한 가지에 꽂혀서 발휘되는 호기심 등등, 밝고 건강하게 묘사되는 호기심보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집단을 위험에 빠지게 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친척집이나 친구집에 가면 우리 집과 다른 구조가 궁금해서 온 집안을 기웃거렸고,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던가, 한 번은 오빠들만 넷 인 큰집에 놀러갔다. 오빠들이 놀아주질 않아 심심해서 책을 찾으러 오빠 방에 들어갔다. 읽을 만한 책이 보이질 않아 찾아보는데, 책상 밑에 세로로 쌓아둔 책무더기를 발견했다. 굳이 책상 속으로 기어들어가 쌓여있는 책 중 몇 권을 꺼냈다. 표지부터 수상했다. 이상한 눈빛으로 옷을 벗은 여자들 사진만 가득한 얇은 잡지들. 어린 마음에도 왠지 건드리면 안될 것 같아 고대로 넣어두고 나온 적이 있었다. 아마 오빠들은 모르고 있으리라. (그래서 명절이면 등장하는 삼촌 장난감을 망가트리는 조카들 유머를 볼때마다 늘 찔린다.)
낯설어 가만 있던 동생과 달리 나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궁금한 것을 찾아다녔고, 그럴 때마다 여자아이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어른들로부터 얌전히 있으라는 지적만 받았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궁금한 것이 많아 질문을 자주 했지만 쓸데없는 것을 물어본다는 답변을 듣거나 수업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친구들의 타박도 받아야했다.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를 몰랐다. 학교생활 하는 내내 호기심을 발휘할 때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보질 못했으니 호기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잘 발휘했다면 학문적으로 풀렸을 수도 있었을 듯싶어 조금 아쉽다.
사실 이런 내 호기심은 아버지로부터 왔다. 내 아버지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아 어디를 가던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관심을 기울이는 분이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부터 그랬다. 아버지는 변함없었는데 부모님과 갈등을 겪기 시작한 사춘기 이후로는 그런 모습이 부끄러웠다. 여행을 가도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보시고 무엇이든 직접 만져보셔야 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식당에 가도 그랬다. 이 반찬은 무엇인지 이 음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잡아서 어떤 식으로 만드는 지 까지 궁금해 하시며 일하시는 분들에게 말을 걸곤 하셨다. 아버지의 호기심은 특유의 외향성이 더해져 여기저기서 발휘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질색팔색을 하곤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그 덕분인지 상식이 풍부하셔서 어딜 가서 누구와 있던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팔십오 세가 되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가끔 친정에 가면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붙잡고 물어보신다. 친정에 뜸하면 전화를 붙들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큐알코드는 어떻게 보는 거냐, 핸드폰 카톡으로 사진 보내는 건 어찌 하냐, 무슨 앱이 안 깔린다, 컴퓨터에 뭐가 이상하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아버지다.
이후로도 호기심에 대한 내 편견은 중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변함없었는데, 얼마 전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말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잃고 싶지 않은 것으로 호기심, 유머, 품위를 꼽았다. 노년이 되어도 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비법처럼 말 한 것이 경제력이나 배우자가 아니라 저 세 가지라니. 참신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새로운 것도 없고 신기한 것도 없어진다. 재미도 흥미도 떨어지고 알고자 하는 욕구나 에너지도 사라지게 된다. 그럴 때 호기심은 젊음을 유지하게 해주고 생에 활력을 더해주는 유익한 성품이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궁금함으로 사귐의 폭을 넓히고, 세상에 대한 궁금함으로 사회에 대해 관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 호기심이 행복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나와 아버지의 호기심 많은 성향을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생의 기쁨, 긍정적인 에너지와 활력을 호기심은 만들어낼 수 있다. 어릴 때는 아빠의 호기심과 외향적인 성격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치매 없이 건강하게 팔순중반을 보내시는 아빠만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세상과 사람에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더더욱 즐겁게 중년을 보내고 노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일 수도 있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