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무엇의 계절일까? 누구는 굴이나 홍합이라고 답할 테고, 누구는 방어라고 답하겠지. 과메기 혹은 호빵이나 붕어빵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터다. 그렇게 하나씩 꼽아가며 겨울을 대표하는 음식을 말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게 겨울은 물미역의 계절이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시장 좌판에서 파는 미역을 자주 사오셨다. 천 원에 한 바구니 가득 들은 물미역, 물에 불려 끓여먹는 국거리용 마른미역 말고 갈색의 비리고 길죽한 미역, 끈적이고 미끄덩거리는 바로 그 생미역 말이다. 굵을 소금을 촥촥 뿌려가며 찬물에 바득바득 씻은 후 끊는 물에 살짝 집어넣어 데치면, 갈색의 미역이 순식간에 선명한 초록색이 된다. 그렇게 데쳐낸 초록 물미역을 찬 물로 헹군 다음 고무줄로 꽁꽁 묶인 끝 부분을 잘라내고 손가락 길이로 숭덩숭덩 썰어내면! 내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좋아하는 반찬이 됐다. 한결 연하고 부드러워진 초록빛, 싱싱하고 부들부들한 미역을 잘라서 우리는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겨울마다 배부르고 맛나게 먹었던 물미역의 기억이 바뀐 건 스무 살이 넘어, 자취를 하던 때였다. 방학을 했어도 집에 가지 않고 남아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던 배고픈 자취생 시절. 친구와 함께 해먹는 값싼 반찬으로 나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물미역을 선택했고, 찍어먹을 양념장을 준비해서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에 서툴지만 내가 만든 양념장을 듬뿍 찍은 물미역을 얹어 먹기 시작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어, 물미역 찍어먹을 양념장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여기 있잖아."
"그건 간장이잖아. 누가 물미역을 간장에 찍어먹어, 초고추장에 찍어먹지."
그랬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집처럼 물미역을 양념간장에 찍어먹는 줄 알았다. 양념간장이 아닌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사람들 이 있다는 걸 그 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 양념한 간장에 찍어 먹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꽤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물미역을 양념간장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회도 아니고 왜 초고추장에 찍어먹지?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먹어봐, 우리 집에선 항상 이렇게 먹었는데, 맛있어."
하지만 양념간장에 찍어 먹은 친구의 얼굴은 무언가 부족한 표정이었고, 결국 일어나서 옆 방 친구에게서 초고추장을 한 종지 얻어왔다. 사실 먹는 나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날 그 밥상에는 엄마가 만든 양념간장이 아닌 내가 만든 짝퉁 양념장 밖에 없었으니까. 나 역시 초고추장에다 함께 미역을 찍어 먹으면서 깨달았다. 데친 물미역을 맛난 반찬으로 기억하는 건 엄마의 양념간장 때문이었다는 걸.
엄마는 물미역을 데치기 위해 불 위에 물을 올려놓고 나면 바로 양념장을 만드셨다. 매운 향이 나도록 양파를 잘게 다지고 마늘을 까서 식칼 손잡이 꼭지로 콩콩 찧어 넣고, 파도 송송송 썰어 넣으셨다. 그리고 식초, 설탕, 고춧가루를 적당한 비율로,(언제라도 그 맛을 찾아 낼 수는 있지만 재현할 수는 없는 비율로)넣고 휙휙 저은 후 참기름 한 방울을 똑, 떨어트리면 완성이었다. 새콤달콤하면서 적절히 짭조롬하고 마지막에 살짝 올라오는 고소한 향이 물미역의 생생한 바다의 맛을 한층 끌어올려 씹으면서도 즐거웠다. 미역의 비린맛을 식초로 잡으면서 미역의 본래 향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짠 맛에 슬며시 밀려오는 단맛까지, 완벽했다.
식초의 강한 맛과 설탕의 단 맛이 미역 맛을 다 감춰버리는 초고추장에 비해 이 얼마나 복잡하고 풍부한 맛이란 말인가. 이런 양념간장의 맛을 모르고 초고추장에만 찍어먹는다면, 데친 물미역을 맛을 충분히 느껴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양념장은 물미역의 맛만 살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향이 나도록 구워 찍어먹는 마른 김과도 환상궁합이었고, 폭 익은 김장김치를 씻어내 밥에 싸먹는 김치 쌈밥에도 제격이었다. 그렇다, 우리 집은 그때도 쌈장이 아니라 양념간장에 김치쌈을 해먹었다. 손바닥에 씻은 김치를 올리고 하얀 흰 쌀밥을 올린 다음 엄마의 양념간장을 더해 싸먹으면 볼록해진 뺨만큼 겨울의 맛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차가운 김치의 아삭한 식감, 뜨거운 밥의 온기, 거기에 더해지는 간장의 감칠맛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직장일을 마치고 서둘러 돌아온 엄마가 시간과 품을 많이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소박한 반찬이었을 텐데, 그게 뭐 그리 맛있다고 여전히 기억할까? 그건 아마도 하루 종일 기다린 엄마의 얼굴을 보며 다 같이 둘러앉아 먹었기 때문일 거다. 밥상에 흘리도록 숟가락으로 양념장을 듬뿍 떠서 물미역을 펼쳐 싸먹기도 하고, 서툰 젓가락질로 물미역을 집어 내 침도 같이 양념장에 푹 담그며 먹던 기억이 들어있기 때문일 거다. 다시 생각하니 겨울은 물미역의 계절이 아니라 양념간장의 계절인 듯하다. 내가 양념간장의 맛을 기억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