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냄새들의 기억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는 다섯 가지 감각을 오감(五感)이라고 한다. 이 중 없어도 살 수 있는 한 가지를 고른다면 무엇일까? 다른 넷에 비해 덜 불편하고, 비교적 위험이 덜 하며, 그럭저럭 사는데 지장이 없는 감각. 아마도 대부분 후각을 고르지 않을까 싶다.
시각과 청각은 사회생활에 필요하고 촉각은 안전한 삶에 필요하다. 직접적으로 생존에 영향을 덜 미칠 것 같은 감각은 맛과 냄새인데, 이 중에 하나를 버리라면 아무래도 냄새일 것이다. 코를 막고 먹으면 양파와 사과를 구분 못할 만큼 후각과 미각이 밀접하다지만, 맛을 잃고 냄새만 느끼며 사는 것 보단 평생 냄새를 못 맡더라도 맛을 즐기며 사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많을 듯하다.
콧구멍에 고착된 것이든 냄새로 환기된 기억에 집착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냄새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과 기쁨이 있다. 고약한 냄새를 피하고자하는 에너지만큼 좋은 냄새를 찾는 에너지가 삶에 활력을 준다.
그런데 나는 왜 냄새에 끌리는 걸까.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부분과 후각을 관장하는 부분이 가까워서라고 뇌과학이 이미 밝혔듯이 기억 때문에 냄새에 강한 인상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유아기에 내 정신 에너지가 항문대신 콧구멍을 파서 나오는 코딱지 배출에 집중되어서 코와 관련된 행위와 현상에 고착된 거라 해도 할 말 없고.
1970년대, 80년대는 집안에서 담배 피우는 게 평범한 일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시엔 안방에 전화기와 재떨이가 같이 있었고, 남자 어른들은 신문을 보거나 티비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어릴 때 할아버지는 바둑을 두시며 담배를 태우셨다. 7남매에 21손주를 두시고 92에 돌아가셨으니 숫자로만 보면 꽤 다복하셨을 것 같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래서인지 할아버지한테선 노인 냄새보다 담배냄새와 책냄새, 살짝 구취냄새에다 은단냄새가 섞인 냄새가 배어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뽀뽀를 할 때도 앞에서 얘기를 들을 때도 그 할아버지의 분위기인지 냄새인지 분간 안 될 정도로.
그래서 냄새를 그리워한다. 눈으로 본 것은 색이나 형태를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고, 귀로 들은 것은 비슷하게 문자로 표현하고 멜로디를 따라 할 수 있다. 맛은 좀 어렵다하더라도 먹어본 것과 닮은 맛을 재현해서 몇백년씩 손맛이 내려가기도 하는데. 냄새는, 같은 냄새를 재현할 수 가 없다. 할아버지 얼굴은 사진으로 볼 수 있지만, 할아버지 냄새는 다시는 맡을 수가 없다. 냄새를 떠올리면 더욱 그리워지고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라진다는 것. 휘발되어 버린다는 것. 내 콧속에 들어왔던 분자가 지구상 반대편까지 날아가거나 그 전에 소멸되거나 다시 잡을 수 없어 안타까운 냄새들.
기억의 총체는, ‘향’으로 밖에 표현하질 못하겠다. 세상의 모든 냄새들엔 그 만큼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