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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y 11. 2024

집 뛰쳐나간 엄마의 후기

화해의 갈치 해체쇼

안녕하세요, 어버이날 아들에게 욕들었다고 집을 뛰쳐나갔던 엄마입니다. (크흡)

제가 브런치에 어떤 일에 대해 글을 쓸때는 대개 감정이 마무리 된 상태, 한 번 걸러지고 정제된 상태에서 올리거든요. 하지만 이번 글은 정말 날 것 그대로 필터 하나 거치지 않고 올린 글, 속상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충동적으로 올린 글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누워서 침뱉기라도 해야 풀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었나봅니다. 내용도 없는 글이건만 어버이날에 무슨 막장드라마가 펼쳐진 사연인줄 알고 다음에 메인에 올려놨더라고요. 당연히 조회수가 올라갔고요, 늘어나는 조회수를 보면서 저는 이틀째 샤워기로 쏟아붓는 침을 맞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실 아들이 엄마에게 직접 욕을 한 것은 아닌 것 쯤은 알고 있었으나, 한 번 확대해석되고 끓어오른 마음은 쉽게 넘쳐버리더군요. 아 몰라 나 기분나빠, 너 미워 빼애- 이러고는 혼자 자폭해서 자발적인 거리두기를 실천한거죠. 집에 있다간 더 말도 안되게 화를 낼까봐서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 눈치빠른 아이라면 재빨리 진심어린 사과라는 찬물을 끼얹어 끓는 물을 식힐텐데, 우리집 중1이는 그런 요령도 눈치도 없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음을 알아도 쉽게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잘 못했다는 말도 잘 못하지요. 알고 있으면서도 점점 타오르는 화를 스스로 수습을 못했고, 종국에는 열을 식히려고 나갔던거죠. 


물론 그 사이에 가스라이팅은 제대로 시전했습니다. '내가 너를 아들이라고 낳고 좋아했다'는 고전적인 어구부터 '평생 이러고 살아야하는 내가 불쌍하다'는 동정심작전까지 골고루 써먹었네요. 오십먹고 이게 무슨 짓이랍니까. 에휴. 이 부족한 엄마, 이번에도 다정한 이웃분들의 댓글로 반성 하고 위로 받았습니다. 읽어주시고 마음 써주신 분들께 감사하여 뒷 얘기를 전합다. 


수학여행가는 큰아들 짐을 챙겨주다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나방을 발견하고 무심코 맨손으로  잡은 다음 양손을 펼쳐 으아아아하고 소리 지르며 장난스레 작은아들한테 달려갔더니 평소 나방을 아주 싫어하는 중1이 기겁하며 한다는 말이 "우리집 지랄났네"여서 엄마한테 지금 욕한거냐 빡친 엄마가 매우 분노하여 소리지르고 화를 내고 폭언을 퍼부으며 온갖 성질을 다 부렸는데도 아들이 잘못했다 말도 안하고 울기만하자 열받아서 집을 나가 잠시 벤치에 앉아 눈물 찔끔거리며 저녁밥 고민을 한다.  끝.

라고 브런치에 글을 올린 다음 이야기 - 


1. 벤치에 앉아 진정하고 나니 배고픔을 느낌. 마트에 들러 마침 할인 스티커 붙은 갈치 발견하고 자몽에 이슬 한 병과 함께 양손에 들고 귀가.


2.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폰을 보고 있는 큰 아들 발견. 거실 소파에 누워 폰 하는 작은 아들 발견.  이어 안방 침대에 엎드려 유튜브 보는 남편 발견.


3. 사그러든 불꽃이 파지지직 다시 피어오르는 조짐을 느꼈으나 이미 내 의지로 끌 수 없음. 부엌에 갈치와 소주를 내려놓고 남편에게 다가감.


4. 엄마가 화가 나서 나갔으면 아빠가 말이야, 아들한테 뭘 잘 못했는지 알려주고 혼도 내고 엄마오면 사과하라고 가르치고 해야지, 엉 지금 같이 핸드폰이나 하고 놀고 있고 말이야 이게 지금 말이 돼!!!!!


5. 남편이 아들에게 공부 안해서 그런다는 둥,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다는 둥 내 눈치를 보며 엉뚱한 잔소리하는 동안 조기와 갈치를 굽고 튀겨 저녁을 차림.


6. 입으로 조목조목 아들의 죄상을 까발리며 손으로 생선 가시를 까발려 아들 밥 위에 얹어줌. 아들은 말없이 발라준 생선살하고 밥 한 그릇을 다 먹움. 엄마는 그 와중에 '자몽에 이슬' 한 병을 다 비움.  끝.



저 통통한 조기와 짭짤한 갈치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다 치우고 나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너, 뭐 잘못했는지 알아?"

"....알아."

"그러면 어떡해야돼?"

"....."

"엄마한테 할 말 없어?"

"....미안해."

"너는 그러면 엄마가 화내기 전에 얼른 사과해야지, 어, 실수면 실수다, 엄마한테 한 말이 아니다, 뭐 이렇게 말 해야할거아냐!"

"....."

"니가 울긴 왜 울어. 여자사람한테는 먼저 사과부터 하는거야. 너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고 애인 생기고 와이프 생길때도 꼭 기억해둬."

"근데 그냥 엄마한테 사과하는게 자존심상한단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여자사람한테는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단 미안하다고 하란말이야."


엄마는 자존심도 없는지 아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고요, 다음 날 아침에는 잠도 덜 깬 아들 껴안고 엄마가 사랑하는거 알지, 응 엄마 나도 사랑해,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출근했습니다......


아, 싸우고 나서 화해할때는 생선이 참 좋더군요. 입술 삐죽거리고 사나운 눈매를 하고서도 손으로 연신 살을 발라 밥에 얹어주다보니 슬슬 마음이 풀립니다. 생선에는 고기에는 없는 다정함이 가득하다는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부부싸움에는 별 효과가 없을 것 같긴하지만 부모자식간에는 꽤 유용한 반찬입니다. 냉동실에 쟁여둘까봐요.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며, 다음에는 정말 다정하고 잘 손질한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달아주신 댓글에 답글을 못 단 이유는 부끄러워서였어여. >_< 한 분 한 분께 이 후기로 대신하겠습니다. 거칠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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