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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15. 2024

다정함에 로그인하는 네 가지 방법

 - 사랑은 하는 걸까, 받는 걸까. 

  어찌보면 유치한 말장난이고 별 의미없는 질문같아 보이지만,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복잡하고 다면적인 무엇이 아니던가.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사랑이 능동일 때와 수동일때, 어느 쪽일때 더 기쁠까? 사랑을 주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크고 기쁜가를 경중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어느 쪽을 더 원하는가, '선호'의 영역은 있을 것 같다. 따져보니 나는 사랑을 주는 쪽보다 받는 쪽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마음에는 내 성향과 기질, 성격보다 성장기의 경험이 더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좀 더 받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연인에게는 손해를 감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관계에서는 손익계산하듯이 공평하게 주고받기를 더 선호했다. 그러다 멀어진 관계들도 있었다. 설익은 밥, 덜익은 열매 같은 나날이었다. 그 나날들을 지내고 이제 내가 조금 덜 갖더라도 타인에게 하나를 더 내미는 다정함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이유없는 다정함에 감동받고 그렇게 다정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타고난 성품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조금씩 다정함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 어떻게 하면 되는걸까. 



  6월부터 미술시간에 수채화를 가르치고 있다. 파레트에 물감을 짜서 말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색의 고유한 느낌을 살펴본다. 붓질을 하는 느낌, 도화지에 스미는 느낌에 집중하며 한 색씩 공들여 칠해본다. 그 다음에 물의 양에 따라 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본다. 이 단계가 끝나면 비로소 혼색연습에 들어간다. 먼저 칠해본 각각의 색들을 조금씩 섞으며 색이 변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파레트에서 섞일 때를 관찰하고 종이위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 마르면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며 경험한 후에야 밑그림을 따라 칠하기로 들어간다. 


  아이들에 따라 이 과정을 지루해 하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빨리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대충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려한다. 하지만 수채물감으로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유지되는 것 같지만,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없이 바로 관계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연인도, 친구도.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안정감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사람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더 가까이 다가가게된다. 나도 모르게 선을 넘기도 하고 내 울타리가 느슨해지기도 한다. 수채화를 그릴때도 원색으로만 칠하는 경우는 없다. 이 색과 이 색을, 거기에 또 저 색과 다른 색을 섞는다. 색을 섞는 것은 색이 지닌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이다. 다른 색과 섞여 탁해지고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다채로운 컬러의 변주를 통해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 다정함도 그렇다. 나와 타인이 섞여야 만들어진다. 타인과 섞이는 것이 나의 고유성을 잃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나만의 색과 함께 타인의 색이 섞이며 더 넓은 스펙트럼의 색을 갖게된다. 간섭과 오지랍, 참견과 꼰대 사이에서 다정함을 유지하는 방법은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섬과 섬의 사이를 인정하고 유지하되 오갈 수 있는 배 한 척이 있는가 찾아보는 마음에서 다정함이 나온다.


  그렇게 여러가지 색을 써서 도화지 칸칸을 채우며 연습하고 나면 비로소 간단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에 들어간다. 수채화 특성상 물을 써서 투명하게 표현해보고 싶어도 아이들은 그 조절이 어렵다. 선명하고 경계선이 분명한 만화그림에 익숙해서 경계가 흐릿한 수채화를 봐도 이게 잘 그린 그림인지 아닌지, 어리둥절해한다. 붓이 지나간 뒤에 마르고 나서 덧칠하기도 쉽지 않다. 마른 다음에 칠해야 하는데 자꾸 그 전에 덧칠을 해서 종이가 물에 불어 일어나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색이 번지기도 일쑤다. 결국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고 짜증내며 포기해버리는 아이도 나온다. 하지만 어떻게든 고쳐보고 다른 시도를 더해서 결국 완성하는 아이들도 있다. 스스로에게 다정함을 베푸는 아이들이다. 자신을 도닥이며 작품을 완성하고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 제출하는 아이. 어깨를 두드려주고 칠판 앞에 붙여주는 내 마음도 뿌듯한다. 다정함은 밖으로도 향하고 안으로도 향해야한다.  


  물론 이미 상해버려 마음을 돌리기 어려운 아이도 있다. 깔끔하게 접어버리고 새 종이에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고쳐서 끝내 마무리할 것인가, 새롭게 재도전할 것인가, 합리적인 판단으로만 결정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 원래 방향과 다르지만 끝내 완성했다는 성취감이냐, 새롭게 다시 시작했지만 시간 부족으로 남아서 완성하느냐.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끝까지 마무리하는것, 다정함에 로그인 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렇게 몇 주간에 걸쳐 수채화의 기초를 익히고 원근과 구도를 배우고 나서 풍경화에 도전한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교실 뒷판에 붙어 전시되기도 하지만 집에 가져가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지기도 한다. 액자로 고이 장식하기에는 아이들이 가져가는 잡다한 결과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고 알아서 처리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며 경험한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에, 몸에, 뇌에 담겨있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를 향해, 혹은 자신을 향해 작고 사소한 다정함이 드러날 것이다. 종이 위에 물기가 마르고 칠했는지도 모르게 희미했던 색이 눈에 보일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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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정한'연재를 마칩니다.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셨던 '다정한' 분들께 깊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제 '다정함'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다음 연재로 다시 뵙겠습니다. : )

  

장욱진의 그림으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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