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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08. 2024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죠

연휴에 어디 안 가요?


잘 모릅니다. 와이프가 가자고 하면 가는거라서요. 아마 와이프한테 계획이 있겠죠?


30대 후반의 S는 두 딸을 키우는 아빠다. 두번의 육아휴직을 하며 전적으로 아이를 돌 본 경험도 있고  살림도 직장일도 최선을 다한다. 주말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유일한 취미인 풋살 클럽은 월요일에 갈 정도. 여행이나 휴가 계획도 자기 생각대로 밀고나가는 것보다  와이프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라고했다.


재작년 작은 딸이 다섯 살 되던 해, 복직하는 부인 대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때 웃으면서 하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둘째가 아직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다녀서요. 좀더 봐줘야 할 거 같아요.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휴직사유라니. 그렇게 육개월 동안 아빠로 열심히 살다 복직해서 지금은 6학년 아이들과 복작대며 지낸다. 


한번은 딸사랑이 지극해서 혹시 와이프가 서운해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잡은 물고기한텐 먹이를 주지않죠"라고 말했다. 그 말에 듣고있던 다른 선생님들이 다들 한목소리로 "어머, 진짜요! 실망이다, 그럴줄 몰랐어요"라고 외쳤다. 그만큼 S가 하는 말이라고 믿기어려웠다.  S는 살짝 멋쩍어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제가 잡힌 물고기에요." 하고 덧붙였다.

"와이프라는 어항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재치있고 다정한 고백이 있을까. 듣고있던 여선생님들은 다들 탄성을 뱉으며 깔깔댔고 남선생님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 아름다운 에피소드를 나만 간직하기 아까웠다. 똥인지 된장인지 보기만해도 구분 할 수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인간은 원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뻔히 보이는 결말인데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 아빠들은 참 다른 거 같아."

"그래야지. 그게 현명한거야"

"웃겨, 자기는 그렇게 안 살았잖아!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랬대?"

"아니 그때는 사회문화가......"


아무리 50대라지만 무슨 김수현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치며 변명한다. 어차피 서로의 덫, 그물, 어항, 감옥 안에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잘잘못 가려 뭐하나. 다정히 한마디 하고 토닥여줘야지.


"앞으로 잘해."


그나저나 다정한 우리 S는 이 연휴, 어디서 재미나게 놀고있으려나. 궁금하다.

사진은 베이비뉴스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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