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주용 JulieSim Sep 20. 2024

솔잎이 싫어진 서른 살 송충이는 어디로 갔을까?

퇴사, 세계여행, 그리고 실리콘밸리

‘6 전공’과 ‘자소설’에 속절없이 치이며 살고 있던 대학 마지막 학기에 썼던 일기가 있어요.

무려 페북에 일기도 올리던 2013년

최근 몇 달 동안 도무지 낫지 않는 감기와 함께 우울함의 극치를 달렸다. 한국을 떠나 커리어를 쌓고 인생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는 꿈이 너무나 간절한데, 정작 집에서는 가고 싶지도 않은 기업의 자소설을 써대고, 학교에서는 시험 보자마자 바로 까먹을 것이 뻔한 한자의 역사와 위진남북조 한문시를 암기해야 한다는 이 엄청난 괴리감들로 인해 견디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국내 취업보다 오히려 더 힘든 길을 가보려 하는 내게 '취업 스트레스로 현실도피하려는 겁쟁이 이상주의자'라는 도장을 찍어버리는 사람들에게, 걱정해 주는 마음은 고마우면서도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꿈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으면 찾을수록 현실적인 장벽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매일 두 번씩 한강을 건넌다.

오늘은 한강을 지나는데, 문득 앞으로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내게 어떤 기회가 오고, 얼마나 용기를 내고,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내가 몇 년 후 여전히 한강을 매일 두 번씩 보는 삶을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시카고강, 도나우강, 센 강, 혹은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어느 도시의 강을 매일 두 번씩 보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를 지배하고 있던 우울과 불만과 좌절을 비로소 한 단계 넘어설 수 있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당장은 현실적 장벽에 온몸을 부딪치고 눈물로 타협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끊임없이 갈망한다는 것만으로도, 갈망할 때마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믿음을 갖고 늘 준비된 자세로 매 순간을 오롯이 산다면, 그러면서도 이렇게 간절히 꾸준히 갈망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언젠가는 내게 뜻밖의 놀라운 기회가 올 것이고, 난 그때 그 기회를 잡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고생스러운 내 인생이 참 기대된다.



그날, 24살의 내가 30대의 나를 상상하며 적어 내려간 꿈은 세 가지였어요. 


1. 한국이 아닌 곳을 베이스로 삼아 스스로 개척한 삶을 살기 (되도록이면 샌프란시스코!)

2.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다국적 글로벌 기업에서 유창한 영어로 밥벌이하기 

3.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남자’ 만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에 빠지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제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샌프란시스코 최애 장소, Grand View Park
국내파 문과 출신 기획자로서 10년 동안 막연하게 해외취업을 꿈꿨습니다. 퇴사 후 떠난 세계여행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고, 현재는 실리콘밸리에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두 문장에 농축되어 있는 저의 솔직한 경험과 깨달음을 조금씩 풀어보고 싶습니다.


제 현재 '브런치 작가소개'로 그 이후 제 인생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10년 전 일기에 “앞으로 펼쳐질 고생스러운 내 인생이 참 기대된다.”라고 썼는데, 그 ‘기대(?)’보다도 한층 더 스펙터클한 과정을 거치고 난 후, 감사하게도 제 인생은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꿈같이 펼쳐졌어요.


1. 스물두 살의 저를 온전히 흔들어 놓은 첫사랑 같은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일매일 저만의 삶을 일궈가고 있고요

2. 실리콘밸리에 있는 다국적 글로벌 기업에서 ‘유창'과는 거리가 먼 영어일지라도 6년 차 디자이너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은... 할 말이 너무 많아 나중에 따로 풀어볼게요!)

3. 그리고 그때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남자'가 대체 뭔지 쓰면서도 몰랐던 것 같은데, 결국 정말 딱 그런 짝꿍을 만나 함께 가정도 꾸리게 되었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라는 옛말이 있잖아요?


앞으로 나눠보고 싶은 이야기는


그 말을 평생 듣고 한국 땅에서 솔잎만 먹으며 살아오던 평범한 송충이 한 마리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다양한 잎을 먹고 싶다는 너무나 막연한 꿈을 너무도 간절하게 꾸다가,   

홀로 모험을 떠나 설사병도 앓고, 식중독으로 개고생도 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딱 맞는 참나무 잎을 찾아가는


그런 여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브런치 글이 2020년 이맘때쯤이니, 무려 4년 만에 찾아뵙네요. 

늦은 나이에 해외로 간 사람들이 흔히 겪는다는 '0개 국어 신드롬 (한국어도,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눠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솔잎이 싫은 송충이, 실리콘밸리로> 브런치북에 열심히 풀어 볼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