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꼭, 세계여행이어야 하는 나만의 세 가지 이유
‘퇴사 후 나 홀로 세계여행’이 요즘 SNS나 미디어에서 종종 보이긴 해도, 막상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인지 "왜 세계여행을 떠났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저의 ‘진짜' 이유를 풀어보려고 해요.
퇴사와 세계여행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고민과 생각이 쌓였지만, 그 불씨를 지핀 건 싱가포르까지 날아가서 맞고 온 한방의 팩폭이었어요.
[전편 Ep 03.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명확히 모르는 것 같네요" 참고]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알람'이라는 게 있죠. 어느 나이가 되면 꼭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누가 정한 건지도 모르지만 규범처럼 여겨지면서 모두가 따르고 있는 거요.
그 알람은 아기 때부터 울리기 시작해요. '제때' 말을 안 하거나 걷지 않으면 부모님들은 '혹시 내 아이가 모자란 아이가 아닌가' 걱정해요. 걷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다음엔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난한 의무교육의 여정이 시작돼요. 20살엔 대학, 20대 중후반엔 취업, 취업하면 곧바로 결혼이라는 알람이 울리고, 30대 후반쯤엔 어느 정도 직급을 달아야 하고, 애도 몇 명쯤 있어야 하고, 애들 교육은 또 어쩌고저쩌고…
어느 나라나 전반적인 나이대별 알람은 있겠지만, 우리나라 알람은 나이를 중요시하는 문화인만큼 유난히 엄격한 것 같아요. 알람에 조금만 늦어도 '재수생', '삼수생', '노총각', '노처녀', '만년 과장' 같은 꼬리표가 바로 따라붙어요. 이런 꼬리표가 붙으면, 국민 누구나 그 사람에게 한마디 던질 자격이라도 생긴 것처럼, 온갖 오지랖 공격을 속절없이 받아야 하죠. 가끔은 그 꼬리표 안 받으려고 우리 모두 이렇게 죽어라 열심히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뭐든 무식하게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던 저는 이 사회적 알람을 아주 충실히 따르며 살아왔어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고, 왜 그래야 하나 크게 의문을 품어 보지도 않았어요.
유치원에 들어간 이후로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은 기본, 초딩 때 콩자반 젓가락으로 빨리 옮기기 시험부터 다들 OMR 카드에 그림을 그려 내버리는 고3 마지막 기말고사까지, 저는 그 어떤 시험에도 100%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적이 없어요 (대학교에서의 시험들은 물론 제외^^).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적당한 회사에도 취직했죠. 이 정도면 사회적 알람을 꽤 모범적으로 따르며 살아온 셈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결과… 이십 대 후반의 내게 남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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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는 잔인한 자각이었어요.
처음에는 억울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해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그게 옳지 않았다고?’
대상 없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고, 배신감도 느꼈습니다.
한참의 부정적인 감정이 지나간 후에 깨달은 바는 얼탱이가 없을 만큼 명료했어요.
- 저는 항상 ‘제때에’, ‘좋아 보이는 것’을 꾸역꾸역 해내느라 바빠서,
- 진짜 중요한 고민— ‘무엇을'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거예요.
예를 들어,
-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을 가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 ‘어떤 전공’을 ‘왜’ 공부하고 싶은지는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 ‘대학 졸업하자마자’, ‘조건에 맞는 회사’를 가는 데만 몰두했을 뿐,
- 정작 ‘어떤 직무’로 ‘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했죠.
결국 저는 결심했어요. 이 ‘사회적 알람’을 스스로 깨버리기로. 남들 따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결정을 하도록 압박을 주는 그 시끄러운 알람시계를 제 손으로 부숴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만약 지금 멈추지 않고, 그동안 유예하던 어려운 질문들을 여전히 회피한 채 그냥저냥 지나가버리면, 앞으로도 계속 애매하게 어영부영 살아가게 될 것 같았어요.
‘해외취업’이라는 꿈은 꿈으로만 남고, 결국 어느 날 슬그머니 잊혀지겠죠.
그리고 그 뒤로 울릴 다른 알람들, 예를 들어 '결혼'이나 '출산' 같은 것에도 그저 무의식적으로 휩쓸려 버릴 것 같았어요. ‘노처녀'라는 꼬리표 붙기 전에 서둘러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에, ‘제때에' 제 앞에 있는 적당한 남자를 어거지로 제 이상형에 끼워 맞춰 얼렁뚱땅 결혼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다들 그러고 사는데, 왜 유난스럽게 세계여행까지 가야 하냐고요?
맞아요. 저도 수백 번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를 정리해 보자면,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아요.
제 전 글 Ep 02.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면서 늙어가고 싶지 않아서 에서도 언급했지만, 10개월 샌프란시스코 교환학생 기간 동안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처음으로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는 거예요.
평생을 태어나고 자라온 내 나라 대한민국은 샌프란시스코와 비행기로 11시간이나 떨어져 있었어요. 덕분에 처음으로 그 사회에서 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의 시선, 기대, 간섭 등과도 멀어질 수 있었죠.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니, 정신적 거리도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구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내적 자아 속에 존재하는 타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대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너는 지금 당장 뭘 하고 싶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즉흥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그동안 제가 좋아했던 것들 중 일부는 사실 ‘이걸 하면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거야’라는 생각에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이고,
제가 알았던 저의 모습 중 일부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인정해 줄 거야'라는 생각에 제 모습이라고 '착각했던’ 것들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더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제삼자 필터'를 거친 제 선택이 진정한 자아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그 깨달음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어요. 저는 그때 비로소 타인과 정신적으로 분리되며 온전한 자아를 찾을 수 있었어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느낌이었죠.
이제는 한국에서 울리는 알람을 꺼놓고,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와 도시에서 그 경험을 확장하며 제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을 처음 배워 훈련하는 데 집중했었다면, 그때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쌓은 지금은 더욱 목적성 있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더 넓은 세상에 저를 던져놓았을 때, 제 마음의 목소리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기존의 세계나 틀을 깨고 나와야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자아로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사회적 알람'을 깨버릴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퇴사 후 세계여행'만큼 이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어요.
사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꼭 거창하게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겠죠. 또,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원하는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전혀 없구요.
그럼에도 저는 꽤나 절박했어요. 너무도 절실하게 나를 알고 싶었고, 내 삶의 육하원칙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어요.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왜 그러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고, 인생의 방향성을 잡고 싶었어요. 더 이상 ‘사회적 알람’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내 삶의 방향키를 온전히 조종하고 싶었답니다.
"Not until we are lost do we begin to understand ourselves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라는 말처럼,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해 놓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완전히 길을 잃어봐야 할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단순하고 표면적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여행에 미쳐서'입니다.
‘해외취업'에의 꿈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지만, 평범한 한국 직장인으로 살고 있던 저에게, 여행은 유일하게 꿈과 현실의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는 일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자타공인 중증 여행 덕후의 삶을 살고 있었답니다.
‘기획'이라는 직무 특성상 하루 휴가 내기도 눈치가 보이는 곳이었지만, 갖은 수를 다 써서 적어도 분기당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금요일에 캐리어를 끌고 출근해 퇴근 후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주말 동안 여행하고, 월요일 새벽에 레드아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서 또 캐리어를 끌고 출근한 적도 여러 번이었죠. (그래서 회사에서 제 별명이 ‘가짜 승무원'이었어요.)
온갖 여행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고, 여행 관련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어요.
여행용품 전문 쇼핑몰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면서 수납공간 많은 아이디어 상품들에 감탄하는 게 제 취미였구요,
오로지 여행만을 위해 월급의 70%를 모두 저금했어요.
죽기 전에 한 번은, 꼴랑 이틀 휴가 내기 위해 이 주간 상사 눈치 보면서 전전긍긍하지 않고, 가까운 나라만 깨작깨작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정말 질리도록 긴 모험 같은 여행을 해보고 싶었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해외취업을 꿈꾸다가, 뚱딴지 같이 세계여행을 꿈꾸게 된 이야기입니다.
너무 뜬금없는 전개였나요...?
다음 글에서는 7개월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후 제게 남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제 세계여행이 궁금하시다면, 저의 예전 글들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