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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주용 JulieSim Sep 23. 2024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면서 늙어가고 싶지 않아서

‘해외취업병'의 시작. 어찌어찌 사회생활의 시작. 간절한 삽질의 시작.


‘해외취업병’의 시작


대학교 2학년,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졸업 후 기자가 되겠다는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으로 학보사에 들어갔어요. 대학 시절 일 년 반을 바쳤던 학보사 생활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서 꿈틀거릴 만큼 강렬하고 소중한 추억과 인연을 남겨줬지만, 동시에 기자 일이 얼마나 적성에 맞지 않는지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기사인 ‘기자비망록'을 쓰고 학보사를 나오게 됩니다.


(중략)
나는 남에게 나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만큼 타고난 무대체질은 아니다. 나는 또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기자는 ‘무대’가 아닌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할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다. ‘연세춘추 웹미디어부 기자 심주용’. 기자가 되기 전에는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딱 맞는 명함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그게 얼마나 나에게 부자연스러운 명함이었는지 깨닫고 있다. 

그래도, 그걸 깨달아서 참 행복하다. 이제 홀가분하게 타자기를 놓고, 명함을 놓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 <깨닫고, 나는 나간다 [기자비망록]>, 심주용 기자


꿈이라고 믿었던 것을 하나 잃고 나니 마음이 불안해졌어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틈틈이 교환학생 준비를 해서 샌프란시스코로 떠났습니다.


처음 해보는 해외 생활, 처음으로 부모님 울타리를 떠나 해보는 홀로서기, 처음 들어가 보는 진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들, 처음 사귀는 외국 친구들, 처음 맛보는 음식들, 그리고 처음 겪는 문화 충격… 

저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생활은 온통 '처음'으로 가득했어요. 그 ‘처음'들이 정신 챙기기 힘들 정도로 물밀듯 밀려왔지만, 저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신나고 즐거웠답니다.


2010년의 나.jpg (대략 매일이 형광 주황색 같은 느낌적 느낌!)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열심히 살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다만, 한국에서의 '열심히'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기사를 쓰는 대신, 그곳에서 저는 온몸의 감각을 최대한 깨워 '열심히' 모든 경험을 흡수했어요. 그 모든 ‘처음'들에 오감을 열고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처음으로 제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동안 한국식 필터로만 세상을 봤다면, 이제는 그 필터를 제거하고,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법도 배웠어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작은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 없었음...)를 들고 다니며 매일 1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100장도 턱없이 부족할 만큼 샌프란시스코는 놀랍도록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도시였어요.


그곳에서 저는 처음으로 진정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그전까지 느꼈던 많은 감정들이 반쪽짜리였다는 걸 깨달았죠. 마치 처음으로 위대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그전의 감정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그 10개월 동안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해 배운 것들이, 그 이전 20여 년 동안의 삶보다 더 많았어요. 제 자아를 완전히 뒤흔드는 경험이었죠.


그렇게도 오지 않기를 바랐던 교환학생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면서 결심했어요.


‘언젠가 꼭 다시 이곳에 돌아와 살아야지.’

그렇게 저는, 걸리면 약도 없다는 ‘해외취업병’에 씨게 걸려버리고 말았답니다.


당시 내 마음을 대변하던 공책 표지



어찌어찌 사회생활의 시작


‘해외취업병'에 걸려 애를 태워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이렇다 할 스킬 하나 없는 중어중문 전공에, 딱 ‘10개월 교환학생' 수준의 애매한 영어 실력, 중구난방한 대내외 활동 경험들... 그나마 내세울 만한 건 온 학창 시절을 갈아 넣어 겨우 얻은 SKY 대학 졸업장 하나뿐이었지만, 해외취업 시장에선 그처럼 쓸모없는 것도 없었죠.


결국, 일단 한국에서 어디든 취업해 경력을 쌓고 돈도 모으면서 기회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잠깐 머물 곳이라는 생각에 큰 고민이나 열정도 없었지요.


다만,

재계순위 Top 10 같은 대기업에 가면 신입사원으로서 쌓을 수 있는 경력의 범위가 제한적일 것 같아 적당한 규모의 회사를 찾았고, (어차피 전 ‘인적성 바보’여서 그런 기업에서도 절 안 좋아하더라구요)

적어도 사양산업은 피하고 싶었으며,

가능하면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에 중점을 두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제게 처음으로 최종합격 결과를 알린 회사는 그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곳이었고, 게다가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였어요. 저는 망설임 없이 그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조직이동이 잦은 회사였고,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매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을 하기도 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했죠. 큰 군대 같은 팀에서 일하다가, 여고생 동아리처럼 돈독한 작은 팀에서도 일했어요. 회사에서는 일도, 인간관계도 적당히 흥미롭다가, 종종 그지 같기도 했으며, 성취감도 느끼다가, 또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가끔 '이게 맞는 걸까?', '이 끝엔 뭐가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지만, 퇴근 후에는 그런 골치 아픈 고민 대신, 동기들과의 맥주 한 잔이나 썸남과의 데이트가 훨씬 더 유혹적이었죠. 주말에는 마치 일주일의 보상을 받으려는 듯 계획을 꽉꽉 채워 싸돌아다니다가, 일요일 저녁이 되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또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어요. 




그렇게 입사 1주년이 되던 날, 옆 팀 과장님이 축하와 함께 몰래 시 한 편을 보내주셨어요.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 하리라
신(神)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 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내 가슴의 땅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 있음에 눈물로 매 순간 감사하나니
이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것

아,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시(詩)와 같은 것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한 편의 시

-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서문에 실린 시


(아… 이 시는 정말 읽을 때마다 제 가슴을 뛰게 하고, 아프게 하며, 벅차게 해요.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왜 이리 가슴이 주책맞게 오두방정일까요?)


한국을 떠나 커리어를 쌓고, 내 인생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는 꿈.

그렇게 간절했던 꿈이었지만, 어느 순간 타성에 젖은 직장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면서, 제 꿈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회사 화장실 가장 구석진 칸막이 안에 들어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몇 번을 읽어내려간 이 시 한 편은 제 싸대기를 제대로 후려쳐버렸습니다.


추억의 김치 싸대기 움짤 :)


너, 매일 노래 부르던 꿈이 있는 거 아니었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면서 늙어갈' 생각이야?
‘신이 감추어둔 나’를 인생에서 한 번쯤은 제대로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하는' 그 느낌, 궁금하지 않아?




간절한 삽질의 시작


입사 1주년이 되던 그날, 다시 가슴이 뜨거워진 저는 제 꿈에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더했습니다.


- Before: 언젠가 꼭 해외에 나가서 일할 거야.’

- After: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해외에 나가서 일할 거야.’


그때 제가 스물다섯 살이었으니, 스스로에게 5년의 유예 기간을 준 셈이었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제 마음속 꿈의 ‘언젠가’를 ‘서른 살이 되기 전에’로 바꿨을 뿐인데, 타임라인이 생기니 마음이 훨씬 조급해졌어요.


그 후로 근무 외 시간을 별 의미 없이 보내는 대신, 꿈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뭐든 하며 보내기로 결심했어요. 주변에 저처럼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은 몇 명 있었어도 정작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에, 저는 말 그대로 삽질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점으로 달려가 ‘해외취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나오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이 주제가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닌지, 책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더라고요.  

당시 가장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SNS 중 하나였던 네이버 블로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미국이든, 독일이든, 싱가포르든, 호주든, 미얀마든, 해외에서 밥벌이 중인 언니들을 열심히 찾아 팔로우하고, 사이버 스토커 수준으로 모든 블로그 포스트를 섭렵했어요. 새로운 포스트 알람이 뜨면 설레는 마음으로 메모까지 꼼꼼히 해가며 읽었답니다.   

‘해외취업 워크숍’ 같은 강연이 열리면, 언제 어디서 얼마에 하든 상관없이 득달같이 달려갔어요. 강연이 끝나면 레쥬메나 커버레터 팁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연사님을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눈도장을 찍고 나오기도 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이런 절박한 삽질을 병행한 지 몇개월에 접어들 때쯤, 

‘해외취업'에의 꿈은 한 경험을 계기로 좀 더 비현실적인 궤도로 들어서게 되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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