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 내 마음이 알려준 '답'
기약 없이 떠났던 저의 나 홀로 세계여행은 7개월의 대장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여행 기간: 7개월
여행 국가: 20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스와질란드, 레소토, 포르투갈(리스본, 포르투), 스페인(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모로코(마라케시), 이탈리아(로마, 시칠리아),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헝가리, 체코(프라하), 스위스(취리히, 제네바), 독일(다이데스하임, 하이델베르크), 네덜란드(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미국(샌프란시스코, 시애틀, LA, 뉴욕)
한국에 돌아와서 지인들에게 생존 신고를 하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욕망은, 몸서리가 칠 정도로 매운 음식을 잔뜩 먹은 뒤 ‘내 침대'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생존의 위협 없이 죽은 듯이 잠드는 것이었어요.
7개월 동안 떨어져 있었던 한을 한꺼번에 풀겠다는 심정으로, 일주일 내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집 밖은커녕 침대조차 거의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했답니다. 7개월의 여행 숙취를 해소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필요하더라고요.
전편 Ep 04. 퇴사 후 나 홀로 세계여행, 그 ‘진짜’ 이유에서 굳이, 꼭, 세계여행이어야만 했던 저만의 세 가지 이유를 공유했었죠.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더 넓은 세상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 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었고, 더 넓은 세상에서 제 마음의 목소리를 더 선명하게 듣고 싶었어요.
2. 완전히 길을 잃어봐야 할 것 같아서
더 이상 사회적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사회가 정해 놓은 ‘정상 궤도’를 벗어나 내가 주도하는 삶의 답을 찾고 싶었어요.
3. 여행에 미쳐서
죽기 전에 한 번쯤, 정말 질리도록 긴 모험 같은 여행을 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여행을 통해 제가 찾고 싶었던 답은 하나였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래서 무엇을 하면서, 어디에서 살아야 행복할까?”
그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
라는 고민들이었죠.
물론, 세계여행을 한다고 해서 이런 큰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일말의 실마리나 방향성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 그 질문들에 더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완벽한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세계일주 계획서'를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삶의 질 지수(Quality of Life Index), 그리고 OECD 더 나은 삶 지수(OECD Better Life Index) 같은 자료들을 참고해 어떤 나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조사했어요.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 여가와 개인 관리에 쏟는 시간(Time devoted to leisure and personal care), 고용률(Employment rate), 직업 안정성(Job security) 같은 랭킹들도 분석했죠.
또한, 각 나라별로 해외취업에 성공한 한국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도 세웠어요. 그들은 왜 그 나라를 선택했는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취업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그 선택이 행복한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리란 계획이었죠.
그런데 세계일주 D-0 당일, 인천공항을 벗어난 순간부터 제 여행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획 자체가 불가능할 상황들의 연속이었죠.
여행을 하면서 점점 깨달았어요. 이렇게 큰맘 먹고 여행을 떠나서까지 데이터니 계획이니 하는 것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그보다는 여행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대로, 순간순간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여행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고 맞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자유로운 여행 속에서 딱 두 가지 원칙만 지키기로 했어요.
1. 여행의 모든 순간, 내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나를 미세하게 관찰하기
여행의 모든 순간에 현미경을 대고 마이크로 단위로 내 감정을 살피며, 내 생각을 관찰해 스스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고자 했어요.
2.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마음과 자세로 여행하기
예전에 캄보디아에서 한 배낭여행자와 대화 중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느낀 건, ‘관광객’은 그 나라의 편리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가는 사람인 반면, ‘여행자’는 그 나라의 진짜 삶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편리함만 찾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도 기꺼이 겪고 그것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 말이죠.
그래서 저는 유명한 일일 투어나 관광 명소에만 집중하는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마음과 자세로 여행하려고 노력했어요. ‘여기서 일하면서 살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며, 그 나라의 문화, 생활환경, 비자 조건, 물가, 교통, 그리고 사람들의 성격까지, 낭만을 뺀 보다 현실적인 요소들을 배우려고 했어요. 내가 어떤 도시에서,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가장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죠.
또 여행 중에 새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항상 던지던 질문이 하나 있었어요.
“너희 나라를 한 글자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래?”
이 질문에 대한 각국 친구들의 흥미로운 답변은 그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내 마음의 목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듣고 싶다는 것이 여행의 주요 목적이었던 만큼, 몰랐던 다양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여행을 통해 얻은 수백 개의 깨달음 중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나 홀로 여행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이 질문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이었습니다.
나 홀로 여행 중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일상적인 하루하루에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답니다. 몸이 아프든 날씨가 안 좋든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고,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12시에는 다 같이 우르르 점심을 먹으러 갔죠. 기껏해야 회사 근처 음식점 중 하나에서 (10년 전 물가 기준) 5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을지, 6천 원짜리 순두부찌개를 먹을지, 큰맘 먹고 8천 원짜리 회덮밥을 먹을지 고민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팀장님을 흘끗 보며 ‘5분만 더 기다려볼까?’ 아니면 ‘지금 당장 인사하고 먼저 퇴근해 버릴까?’ 하는 별 시답잖은 선택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별 의미 없는 선택들 속에서 나를 발견할 기회는 거의 없었죠.
하지만 나 홀로 여행을 하면서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갈 곳, 잘 곳, 먹을 것, 입을 것, 탈 것, 살 것, 버릴 것…
이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서 결정하며, 그 과정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스스로에게 크고 작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어요.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 문화, 사람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질문과 선택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갈까?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여행할까?
그곳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까, 기차를 탈까, 버스를 탈까?
오늘은 혼자서 다닐까, 호스텔에서 친구를 사귀어 같이 다닐까?
호스텔 20인 도미토리룸을 예약하고 대신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 좀 해 볼까? 아니면 조금 더 깔끔한 숙소를 예약하고 바나나로 끼니를 때울까?
이 장갑을 산다면 내 배낭의 자리가 모자랄 텐데,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버려야 할까?
해가 지기 전에 사진을 찍으러 갈까, 아니면 조용한 카페에서 글을 쓸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일까, 짜릿한 자극일까?
매일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는 과정에서, 저는 내면의 다양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선택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대신, 그것이 제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고 어느 순간부터는 즐기게 되었답니다.
나 홀로 여행 중에는 생각할 시간도 참 많았습니다. 사실 한국에서의 일상에서도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어요. 물론 퇴근 시간이 늦고, 그 와중에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활동도 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생각할 시간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죠. 다만 늘 심신이 지쳐 있다 보니, 당장의 실질적 이득이 없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침대에 드러누워 가벼운 온라인 세계의 도파민을 추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장기 여행 중에는 반강제로라도 생각할 시간을 참 많이 가질 수 있었어요. 여행의 반은 이동이라더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특히 유심이나 데이터 없이 여행을 하다 보니,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한정된 공간 외에서는 온라인 세계에 방해받을 일도 없었죠.
흔들리는 아프리카 캠핑 트럭 안에서 국경을 넘으며, 천장이 너무 낮아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스위스 기차 2층 침대 칸에서 ‘세계여행 100일 기념일'을 맞이하며, 시골 버스 정류장보다 작은 레소토 공항에서 하염없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저는 오늘 내가 내린 선택들에 대한 이유를 충분히 곱씹어볼 수 있었어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볼수록, 단순해 보이는 질문에도 얼마나 많은 겹겹의 질문들이 숨어 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점점 더 구체적으로, 집요하게 그 안으로 파고들며 나를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꽤 간단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 매일 햇빛을 받으면서 깨니까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아. 따뜻한 날씨가 내 행복에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나는 한 도시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를 잡아서 여행 에세이를 쓰는데, 생각해 보니 그 주제는 항상 ‘사람'이었구나. 바르셀로나에서도 가우디의 건축물에 대해 쓰지 않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 썼었구나. 나에게는 ‘사람과의 관계'가 참 중요한 가치이구나.”
“하루종일 비 맞고, 기차 연착되고, 바가지 쓰고, 잘 풀린 일 하나 없었는데, 이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이렇게까지 행복할 일이야? 역시 인간은 고통 없이는 행복도 잘 느낄 수 없게 설계된 존재인가 봐.”
어떤 날은 조금 더 어려운 질문에 파고들어 보았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 아프리카 부룬디로 해외 봉사를 갔을 때, 초콜릿과 과자를 잔뜩 사 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저에게 NGO에서 일하시던 분이 하신 말씀이 제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어요. “초콜릿의 단맛을 알아버린 후 그 맛을 매일 그리워하는 것보다, 아예 평생 그 단맛이 뭔지 모르고 사는 게 이 아이들에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그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고, 더 나아가 확장된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습니다.
“더 넓은 바다의 존재를 알아버리고 매일 그 바다를 그리워하며 사는 것과, 아예 평생 바다를 모른 채 우물 안의 만족스러운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 중, 나는 무엇을 택할까?”
여행 중 자아 탐구를 하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내가 (그리고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성향과 모순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그 ‘균형'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외향적이기도 하고 내성적이기도 하구나. 하루는 새로운 사람들과 흥미로운 경험을 나누고, 다음 날은 혼자 방콕 하며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것을 반복하며 균형을 맞춰야 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소속감을 원하는구나. 그래서 하나를 얻으면 반대편의 것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구나. 그렇다면 이 균형을 잘 맞추며 살아가야겠구나.”
그리고 같은 질문이라도 언제 묻느냐에 따라 다른 답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이 달라지는 것이 괜찮다는 것도요.
사회에서 기대하는 ‘정상 궤도'를 벗어나 떠난 세계여행은 ‘그나마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완전히 0에서 시작하여 나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용기를 주었어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 기업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거나, 문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획, 마케팅, 영업’ 같은 직무에 한정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나는 줄리라는 사람이야.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해?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죠. 이러한 질문을 통해 저는 여태까지 저에게 주어졌던 것이나, 힘겹게 얻어낸 것 등 알량하게 움켜쥐고 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0부터 시작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탐구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 홀로 세계여행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어요.
새로운 도시의 공항에 뚝 떨어질 때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낯선 얼굴들을 지나,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낯선 숙소로 향했던 순간의 쓸쓸함을 기억해요.
나 빼고는 모두 포르투갈 사람들뿐인 포르투의 새벽 버스 안, 과장되게 웃고 떠드는 달뜬 얼굴들 속에서, ‘이방인’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배낭을 꼬옥 끌어안았던 순간의 이질감을 기억해요.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깔깔대는 무리들 사이를 지나갈 때, 혹여나 여자라서, 동양인이라서 만만하게 보일까 봐, 천적 앞에서 목도리를 확 펼치는 목도리도마뱀처럼, 최대한 당당하게 걸어갔던 순간의 절박함을 기억해요.
여행의 모든 순간들은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어요. ‘내가 이걸 할 수 있겠어?’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그래, 못할 게 뭐 있어? 더 힘든 것도 해냈고, 결국 다 괜찮았잖아.’라며 그 의심을 잠재우는 강한 목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환경에서도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어떤 고난이 닥쳐도 결국 어떻게든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았어요.
그 모든 여정의 결과, 하루는 샌프란시스코의 Ocean Beach를 산책하고 있는데, 제 마음이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래, 지금이야.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이제 그 답을 더 차분하게 분석하고 현실화시킬 때야. 이제 여행을 마쳐도 되겠다.”
그 말은 한창 회사를 다니며 세계여행을 고민하던 시절, 퇴근길에 제 마음이 전해주었던 “그래, 지금이야. 너 세계여행 가도 되겠다.”라는 메시지만큼이나 크고 선명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고, 샌프란시스코는 제 7개월 세계여행의 종착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7개월 후, 저는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오게 됩니다.
제 세계여행이 궁금하시다면, 저의 예전 글들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