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추안 감독(2009) / 중국
인간의 평등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전에는 인간이 평등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간에게는 엄연히 계층이 있고, 서열이 있다. 그것이 학벌이든 자본이든 권력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누군가를 지배하려 하고, 누군가보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 본성일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인간이 자행한 참혹한 전쟁의 역사는 결국 남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많은 것들을 누리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의 섬나라에 불과했던 일본이 근대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다.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막은 조선과 달리 일본은 외세의 침략에 유연히 대처했다는 것만으로도 자국민들에게 큰 불행의 소지를 막았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최초로 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이 패자가 되어 역설적으로 그런 선진 문물을 전파했던 세력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당시에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세계에는 많은 식민지들이 강대국의 속국이 되어 침탈을 당하고, 핍박을 받았다. 영토를 확장하여 부를 축적하고 식민 지배를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저항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고스란히 제국주의를 산물로 받아들였고, 이를 중국과 조선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청일전쟁, 중일전쟁, 조선과의 강제합병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초기지를 확대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을 것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서 유신 세력을 뒤엎은 군국주의자들에게 권력이 넘어가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근대화는 곧 제국주의로 향하는 지름길과 다름없었다. 선진문물로 국가를 발전시키고 하는 일들을 통해 자국민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고, 세계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었다면 일본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가져다준 선물을 그들은 세계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을 뿐이다. 소수 정치세력의 의도적이면서도 무모한 판단이 자국민들은 물론 인류 전체에게 크나큰 비극을 남기게 된 것이다.
<난징! 난징!>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국민당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면서 벌인 학살과 방화, 약탈과 강간 등 차마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숱한 만행의 기록이다. 영화는 난징을 에워싸고 있는 성벽을 전차와 전투기로 파괴하는 장면서부터 시작한다. 일본 군인들은 성벽에 오른 상황에서 욱일기와 무기를 흔들고 환호하고 있지만 역사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저항세력이 남아있긴 했지만 잘 조직된 일본군들의 공격력과 최첨단 무기를 보유한 화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포된 이들은 무차별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집단 학살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포로들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렇게 기관총 세례를 받고, 땅 속에 산 채로 파묻히고 건물에서 불태워진 채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안전지대라는 것이 있어 2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피난처로 삼긴 했지만 그곳이라고 해서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이들의 운명적 행보를 통해 전쟁의 비극성은 더욱 고조된다. 존 라베는 안전지대를 이끌어 가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치지만 실질적으로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은 중국인들에게 영웅적인 존재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의 원제는 ‘City of Life and Death’이다. ‘삶과 죽음의 도시’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과연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안전지대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일본 군인들은 노래를 부르며 고향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학살해 놓고도 전장에서는 죽은 일본 군인들의 제를 올리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죽음에도 격이 있는 것일까?
<난징! 난징!>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찾는다면 한 일본군 장교가 병사들 사이를 지나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난징 시내를 쳐다보는 신이다. 꾸역꾸역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카메라는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병사들의 시선으로 주시한다. 끝도 없이 펼쳐진 주검들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군국주의 일본이 세계사적으로 저지른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난징대학살은 그런 모든 만행의 총체적인 집합체로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30만 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중일전쟁 당시의 비극을 기록한 영화답게 분위기는 시종일관 우울하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때의 난징이 아니었을까? 지나간 역사의 필름을 돌리듯 <난징! 난징!>은 흑백의 화면으로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비극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라고.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한 역사는 되풀이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