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 / 플로리안 갈렌베르거(2014) / 프랑스, 중국, 독일
인류사를 살펴보면 숱한 오류로 점철된 역사가 많다. 그중에서도 전쟁은 가장 잔혹하고 파괴적이다. 특히, 근대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사 중에서도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나치의 유대인학살이다. 역사적으로 홀로코스트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난징대학살의 경우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 1997년 발간된 아이리스 장의 베스트셀러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이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던 난징대학살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도 인간의 악행에 대한 절망감과 협박 등으로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용기 있는 그녀의 노력 덕분에 세상은 비극적인 진실을 알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존 라베 – 난징대학살>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난징대학살에 대한 실체를 알게 해 준 영화다. 이 영화를 필두로 <난징! 난징!>, <진링의 13 소녀>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난징의 비극을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잔학성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도 일본군대의 만행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수많은 포로들이 기총소사로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을 비롯하여 안전구역 내에서 의료진을 향해 거침없이 총탄을 쏘아대고, 포로들의 목 베기 시합을 실행하는 등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장면들은 전쟁의 참상과 아울러 인간 잔학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게 한다.
난징대학살은 공식적인 통계로 3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하지만 당시 난징에 있던 모든 이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은 아니다. 남아있던 외국인들이 주축이 된 안전구역에서는 25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목숨을 구했고, 그것은 존 라베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존 라베는 당시 지멘스라는 회사의 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임기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남아 난민들을 구하는데 힘썼다. 당시 일본은 독일과 동맹관계였기 때문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기만 보더라도 폭격을 멈추는 등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다. 존 라베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수많은 난민들의 목숨을 구했다. 영화 <존 라베 – 난징대학살>은 이런 영웅적인 행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던 존 라베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난징! 난징!>이 비극적인 난징대학살의 전반적인 내용을 영화로 구성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존 라베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군국주의의 상징인 일본군대에 맞서 수많은 목숨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그 자체로서 목숨을 건 행보였지만 존 라베는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행위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인 쉰들러와도 그대로 오버랩된다. 쉰들러는 나치 치하의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힘쓴 영웅으로 존 라베는 아시아의 쉰들러라고 불릴 만큼 행적이 비슷하다. 역설적인 것은 존 라베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총통 히틀러를 추앙하고 신봉하는 나치당원이라는 사실이다. 훗날 존 라베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나치전범으로 체포되는 상황을 맞이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채 목숨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존 라베의 행적을 기록한 영화이지만 난징대학살의 참혹한 현장을 재연함으로써 비극적인 역사의 한 복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학살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난징 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영화를 제작한 이들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