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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선사시대

미술사의 여명과 한민족의 뿌리

by 정작가


‘인류의 탄생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장을 보면, 인간이 원인 → 원시인 → 구인 → 신인의 4단계로 진화했다는 사실이 나온다. 원인(猿人) 중 가장 유명한 인류의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대한 학명에 대한 규정은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그런 학설을 뒷받침하는 현대사의 발견이 여럿 있었다. 이중 한 장면으로 널리 회자되는 ‘루시(Lucy)’의 발견이 이 장에서 언급된다. 이런 인류 진화와 확산에 대한 설명은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아는’ 호모 하빌리스, 직립보행에 적합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는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로 그 범위를 넓혀간다. 이런 인류의 새로운(?) 종에 대한 발견은, 영국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의 말을 저자가 인용한 것처럼 “인간이 인간을 만들었다”라는 선언적 명구로 더욱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인간이라는 종이 탄생하고 원시인이 불을 사용하게 되는 사건이 인간의 삶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고 보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구상 곳곳에 진출하며 빙하기를 접했던 인류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비로소 흔적을 남기게 된다. 어렇듯 저자는 역사의 태동기를 일구어낸 인류의 이동을 한반도와 병치시키면서 한국미술사의 태동을 예고한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평양시 상원 군 검은모루 동굴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역사의 고고학적인 발견 속에서 한국미술사의 태동을 알린 저자가 주목한 유물은 찌르개와 주먹도끼다. 이런 범상치 않은 돌덩이의 발견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했던 조상들의 유물 흔적을 고찰해 보는 것은, 이후 이어질 중기·후기 구석기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출현을 예비한 역사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다.


현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적인 종인 네안데르탈인도 크로마뇽인이라는 새로운 인류의 출현으로 역사 속에서 멀어져 간다. 크로마뇽인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불릴 정도로 진일보한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에서 이렇듯 크로마뇽인에 대해 제법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그들이 활동하던 동굴에서 비로소 인류 최초의 미술 탄생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879년에 스페인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크로마뇽인의 유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인 접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유물은 한반도에서도 중기·후기 구석기 유적들이 발견되곤 하지만 이 시기에 동굴벽화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같은 미술 작품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한국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신석기시대를 혁명기로 여기는 것은 구석기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진일보된 인류사의 족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랑자의 길을 걷던 구석기시대의 인류가 농경 생활을 통해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 가축을 기르는 등 변혁적인 삶의 양태를 보이면서 식생활을 위해 토기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측면에서 혁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비로소 음식물을 저장할 수 있는 용기가 인류사에 출현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땅 위의 짐승이나 어류를 잡을 때 쓰이는 사냥도구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유물들을 통해 한국 미술사의 근원을 파헤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서 신석기시대의 상징인 토기(土器)를 기점으로 이런 접근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쩌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토기는 ‘전 세계 신석기인의 공통된 산물’이었다. 신석기시대에 가장 오래된 토기는 연해주와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조몬 토기다. 이어 중국에서 발견된 채문 토기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돌출해 내다보면 그제야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서 거친 토기 형태로 발견된 덧띠무늬토기에 이른다. 이 또한 한반도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빗살무늬토기 등장과 함께 소멸해 버렸다고 하니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도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덧띠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미적인 감각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빗살무늬토기는 시대의 특성상 미적 감각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제작된 성격이 강하지만 그런 한계적인 상황에서도 고유한 미학적 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석기시대 토기의 추상성은 타래무늬토기와 번기무늬토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기하학적인 추상무늬가 탄생한 배경에는 당시 신석기인의 부호화, 개념화, 상징화의 경향이 구석기시대의 단순한 ‘동물적 본성’에서 발현된 그것과는 진일보된 관점이었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긴 하다. 이런 주장은 아놀드 하우저라는 학자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신석기시대의 한국미술사적인 측면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아마도 반구대 암각화일 것이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알려진 이 암각화는 선사시대 미술의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발견 당시 워낙 많은 그림들로 인해 해석에 혼선을 겪기도 했지만 다양한 학설을 제시하는 학자들의 연구활동을 통해 개략적인 작품의 흐름과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미술사의 첫 장을 열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인류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정착한 선사시대 문화 유적의 발견으로 접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번 장은《한국미술사 강의》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토기와 반구대 암각화로 문을 연 한국미술사 태동의 단초가 되는 이런 유물로부터 기원하여 역사적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점증적으로 늘어나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유물들을 한국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의도대로, ‘공부하는 한국미술사가 아니라 소파에 기대에 편안히 독서할 수 있는 미술사’이기를 고대했던 저자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있는 관점에서라면,《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해부는 저자의 보조적인 역할 수행자의 과업으로서 그 위치를 점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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