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그대로
제임스 앨런은 이 장에서 성취의 기준을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우주의 완벽한 질서에 반해 개인의 책임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접근한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 역시 자신의 것이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모든 책임을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이런 선언적 문구는 마치 세상을 완벽한 질서가 지배하는 이상적인 세계로 착각하게 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과 행복은 자기 내면에서부터 전개되어 나온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하는 대로, 머무르게 된다.
자기 내면의 가치를 추동하는 것은 생각의 힘이다. 고로 생각의 힘은 자기를 제어할 수 있는 영향의 총체다. 이런 생각의 힘을 우리는 곧잘 간과하고 산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행동도 흘러가게 되고, 결국 이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삶자체가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재자 한 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노예가 된다. 그러니 그 독재자를 증오하자’라고 생각하고 말해 왔다. 하지만 요즈음 이런 견해를 뒤집어, “많은 사람들이 노예이기 때문에 한 명의 독재자가 나타난다. 그러니 노예를 경멸하자”라고 말하는 경향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런 견해는 마치 과거 독재자 히틀러가 국민들의 노예근성 때문에 권력자가 된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물론 이런 비유는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독재자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서사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노예처럼 세상의 종속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나약함을 극복하고 모든 이기적인 생각을 떨쳐 버린 사람은 남을 억압하지도 않고 억압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유롭다.
때론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나약한 이들은 곧잘 규정되지 않는 힘의 원천을 믿고, 타인을 억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통제의 합리성을 부르짖고, 실제로 그런 상황에 종속시키려는 성향이 있다. 고로 이런 상황에 내몰리지 않으려면 나약함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핵심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성취를 가져다주는 과실을 얻으려면 제임스 앨런은 자기희생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 자기희생의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높아진 생각의 수준이다. 생각의 비약적인 발전과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작은 부정적인 행위조차도 허용해서는 곤란하다. 이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우주의 원리에 상응하는 조처다.
지적인 성취는 인생이나 자연에서 아름다움과 진리를 탐구하거나 지식을 추구하는 데에 생각을 집중한 결과이다.
결국 세상에서 이루는 성취는 완벽한 이상적인 생각과 행동에 의해 이뤄진다. 이는 제임스 앨런의 우주관으로 신과 연결된 무류성에 기초한다. 오류가 없는 신의 정체성에 비추어 인간 또한 그런 완전한 생각과 행동이 성취를 이룬다는 얘기다. 이는 어쩌면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뜬금없는 이상주의자의 발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뭔가를 이룬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부 수용할 수 있는 관념적 언사이기는 하다.
영적인 성취는 성스러운 열망이 실현된 결과이다. 고귀하고 숭고한 생각 속에 항상 머물며 순수하고 이타적인 생각에 몰두하는 사람은, 마치 태양이 정점에 이르고 달이 차는 것처럼 확실하게 지혜롭고 숭고한 성품을 지니게 될 것이며, 강한 영향력을 소유하고 행복을 누리는 상태로 상승할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생각이 현실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에서 아무런 영향을 끼친 것이 없었는데도 순식간에 세상이 암흑처럼 변하기도 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단지 생각의 작용에서 기인한 것이다. 결국 영적인 성취를 위한 열망의 실현은 어떤 생각을 꾸준히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스러운 열망이다. 세속적인 열망은 그 어떤 성취 또한 보장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 자본의 최정점에 오르려고 해도 그렇지 못하는 것은 그런 열망이 세속적인 성취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고로 성스러운 열망에 가득 찬 생각은 여태껏 실현할 수 없는 세속적인 성취조차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하지만 이런 숭고한 생각에 빠진 사람은 결코 그런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는다.
여기에 성취를 이루는 단어들과 이와 상반되는 단어들이 있다.
자제력, 결단력, 순수함, 의로움, 올바른 생각의 도움
/ 방탕함, 게으름, 불순함, 사악함, 혼미한 생각의 도움
이런 분류는 마치 학창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나 봄직한 것이지만 이런 것들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의 삶은 타락하거나 구원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모든 성공과 실패가 생각에 달렸다고 규정하는 제임스 앨런의 이런 사상은 얼핏 들으면 모든 것을 개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영향 또한 일단은 생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로 그런 개인의 생각대로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