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퀄 드라마는 시즌 형식으로 여러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어려운 여건일 때, 본 작품의 내용을 확장시켜 이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주로 활용된다. <킹덤- 아신전>은 <킹덤> 시리즈 이런 프리퀄 드라마 형식을 띤다. 생사초가 발단이 되었던 역병의 근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이야기의 시초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던 작품이다.
<아신전>은 시즌2 6회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리 보여주었던 느낌처럼 기존의 <킹덤> 시리즈에서 느껴지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극의 배경이 조선 북부 국경 지역을 다룬다는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소 이국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극에 주로 등장하는 부족이 여진족이라는 것도 조선의 풍속과는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드라마에서 특이한 점은 산짐승이 좀비화된다는 점이다. 일찌감치 영화 <부산행>에서 고라니가 좀비화되는 장면은 사건을 전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도 생사초를 먹은 노루가 좀비가 되고, 이를 먹이로 삼은 호랑이가 좀비로 변해 괴물처럼 사람들을 살육하는 장면은 인간 또한 그런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상저야인’이라는 조선으로 귀화한 여진족의 무리들이 보여주는 정체성이다. 이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은덕을 입고 살아가는 소수 부족민에 불과하지만 여진족의 입장에서는 부족을 배반한 일군에 불과했다. 조선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여진족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모호한 정체성은 이들이 차별받고 천대받는 부족임을 각성케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신이 느꼈던 고통과 아픔은 아버지인 타합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강 건너 우리 핏줄에게 돌아가요. 힘들게 잡았던 모피도 뺏기고, 위험한 밀정 노릇까지 해주면서 언제까지 무시당하면서 살 건데요."
이들이 조선인과 대비를 이루는 장면은 극초반에 조선인으로 보이는 한 아낙이 딸과 '상저야인'들이 사는 부족 마을을 찾아와 도살된 가축을 손질하는 타합과 대면하는 신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깨끗한 백의를 입은 조선인 모녀와 달리 이들 부족민은 모두 어둔 색깔의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조선인 아낙이 마치 적선하듯 고기를 땅에 던져주는 장면은 그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더욱 고조시킨다.
<아신전>에서 폐사군은 금단의 지역이다. 수많은 비밀이 숨겨있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이 지역에서 파저위의 부족민들이 15명이나 충격적으로 살해된 사건은 극의 근저에 깔려 있는 핵심 사건으로 아신의 비극적 행로에 단초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극에서 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고드는 방식은 서사의 왜곡이다. 진실은 하나의 증표로 인해 그 진위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소품은 극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조선군이 파저위 부족민의 살해 현장에서 취득했던 증거물은 조선군의 관모에서 떨어진 구슬이다. 이 구슬을 근거로 민치록이 계비조씨의 오라버니에게 추궁하는 장면은 이런 소품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또한 이 구슬을 '상저야인'의 문양이 담긴 진상품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저위의 개입으로 부락민 모두를 비극적인 운명으로 몰고 간다.
이런 이야기의 흐름은 작가의 노련한 개입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조선군의 입장에서 파저위의 부족민들이 살해된 사건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민치록은 그런 비극의 원인이 호랑이에게서 시작되었음을 성토하고, 몰이꾼들을 동원하여 사냥 코스프레를 시연한다. 이런 조선군의 행보를 파악하기 위해 몰이꾼으로 투입된 몇 명의 파저위 병사가 민치록으로부터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상저야인' 문양이 담긴 진상품을 확인하는 대목은 살해 사건의 진실을 조작하기 위한 완벽한 시퀀스로 작용한다. 민치록이 이미 밀정인 타합에게 파저위 부족민들을 살해한 것은 호랑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 또한 사전에 깔아놓은 밑밥이었다. 이런 조작된 진실은 성인이 된 아신이 대부분의 병사들이 출병한 조선군 진지의 막사에서 민치록이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를 보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아신은 이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조선군에 대한 복수심을 실행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여기에서 살해된 파저위 부족민들의 비극미를 고조시키는 장면은 나체가 된 이들의 목, 팔, 다리가 흩어져 참혹한 살해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장면은 흡사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모든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하여 사체 이송을 장면을 보여주던 신과 그대로 오버랩된다. <킹덤> 시리즈가 공포, 고어 장르로도 분류되는 이유는 이런 신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아신의 비극적 행보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신성을 부여할 만큼 대적할만한 적수가 없게 그려진다. 그녀가 준비했던 것은 활쏘기 연습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아신이 뛰어난 전사 수준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전사로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추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드라마에서 아신은 능수능란하게 병사들을 제압하고, 생사초로 병사들을 쉽게 좀비로 재탄생시킨다. 파저위가 있는 진영을 쉽게 넘나들며 정보를 캐고, 그들의 진지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영웅적 서사는 극의 긴장감과 복수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마치 슈퍼맨처럼 변한 아신은 거칠 것이 없이 종횡무진 비극의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이런 아신의 행보는 비극적인 주인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예비하지 않으면 안 될 당위성을 내포한다.
아신이 비극적인 복수를 향해 나아가게 된 과정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부락민들의 비참한 참상, 밀정 행위를 위해 떠난 아버지와의 이별, 파저위 족장의 복수로 인한 부락민들의 떼죽음, 홀로 살아남아 조선군영에서 가축처럼 먹고살며 비참한 생활을 했던 모진 경험, 병사에게 능욕을 당하면서도 아버지가 했던 밀정 생활을 대물림해야 했던 운명, 밀정 활동을 하러 갔던 파저위 군영에서 대면했던 비참한 몰골을 한 부친의 모습, 딸에게 목숨을 끊어달라고 부탁하는 아비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아신의 결정, 급기야 이 모든 비극의 단초가 되었던 폐사군 파저위 부족민 살해 사건이 조선군으로 인해 실행되고 왜곡되었다는 사실은 아신의 복수가 그저 조선군에 국한된 것이 아닌 조선에 대한 복수심으로 확장되는 행로를 걷게 한다.
<킹덤> 시리즈에서 친족 살해 모티프는 세자 이창이 좀비가 된 아버지의 목을 자르는 장면과 <아신전>에서 두 다리가 잘린 채 마치 짐승처럼 목숨만 연명하는 아버지의 운명을 목도하게 된 아신이 요청에 의해 목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재현된다. 이를 드라마의 관점에서 보면, 자식 된 입장에서 올바른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덕과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인간의 죽음을 누군가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히틀러가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유태인 학살 또한 논란을 자초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물론 극에서 전개된 사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일 것이다. 이를 확장시켜 안락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이런 논쟁 또한 인류사적 측면에서 종지부를 찍지 못한 사안인 만큼 숙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신전>은 <쉰들러리스트>처럼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처리되지 않았지만 극의 음울한 분위기처럼 드라마는 시종일관 어둔 조명 톤에서 벗어나지 않고, 비극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아신이 타합과 대화하는 대낮의 장면조차도 어둠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좀비가 된 호랑이를 추격하고 싸우는 억새풀이 넘실대는 평원에서의 격투신이 제대로 된 컬러색조를 반영했을 뿐이다. 이런 일관된 어둠의 정서는 비극미를 고조시키는 장치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어린 아신이 동굴에서 횃불을 들고, 생사초의 효능과 비극을 암시하는 그림의 벽화를 발견하는 장면은 그것이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다. 이런 기호적인 맥락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그다음 시퀀스에서 숲 속에 등장하는 노루, 노루가 생사초를 먹는 과정, 호랑이가 다시 노루를 습격하는 일련의 신을 통해 한 편의 서사를 그대로 재현해 낸다. 이 신은 어린 아신의 시점에서 벽화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신전>에서는 여진족보다 우위에 있던 조선의 횡포로 죽임을 당했던 소수 민족들 간의 비극적인 골육상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보게 한다. 이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강대한 조선의 이미지를 재조명한다는 측면에서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이라는 힘에 짓눌려 지배를 받고 약소국으로서 묘사되었던 조선의 나약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조선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었던 상태에서, 여진족의 시점에서 바라보았던 조선 또한 약소국에 횡포를 부리는 강대국에 지나지 않았던 사실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다.
스페셜드라마 <킹덤 - 아신전>이 프리퀄 드라마로서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나타난다. 왜란을 암시하는 대화 속에서 대국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사신단이 조선국경 의주에 도착하는 장면은 아신과 이승희 의원의 만남을 암시한다. 이 대면과정에서 아신은 이승희 의원에게 생사초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풀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런 생사초의 효능과 활용 방법은 앞선 시즌에서 서비와 조학주 등의 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 왔다. 생사초의 효능과 그 효과의 발현 상황은 시즌을 넘어 회차가 전개되고, 스페셜드라마인 <킹덤 - 아신전>에서도 논쟁적인 여지를 남긴다. 극의 전개상 생사초의 효능은 그 대상에 따라서 다소 기준이 세밀하게 조정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이는 작가의 입장에서 구현해 낸 생사초라는 풀의 효능과 적용 대상이 실재하는 식물이 아닌 가공의 생물이라는 점에서, 혹은 극의 전개에 필요한 소품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개연성을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극의 상황과 정황이 때론 비논리적일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한계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