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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차려먹은 아침밥, 45편, 심플 덮밥

by 기차는 달려가고

어제 나갔다가 많이 걸어서인지 몹시 피곤했다.

푹 자고,

눈곱을 떼고 기지개를 켜면서 부엌으로 나와서는

냉장고를 열어 본다.

이것저것 먹을 것들이 많이 있는데 뭘 고를까?

찬밥을 보니 문득 따끈따끈한 쌀밥이 먹고 싶다.

그런데 반찬 만들기는 싫음.


소시지가 있다.

기름진 독일식 소시지.

지리멸이 있고, 계란도 있지.

주문해서 받은 포기김치는 아직 뜯지 않았고요,

아침부터 손을 대기는 싫네.

시큼해지려는 깍두기는 있다.

어떻게, 최소한의 손길로 이 재료들을 mix and match 시킬 것인가.

요리는 식재료들과 양념들의 조화이다.

솜씨는 거들뿐.

그러니 음식을 만들려면 각 재료의 맛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는 게 나의 주장입니다.



작은 냄비에 물을 끓여 탱글탱글한 소시지를 데쳐낸다.

데쳐내면 짠맛과 첨가물, 기름기도 덜게 되고,

또 따뜻한 소시지가 맛있거든요.

오븐용기에 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계란을 담고 미니오븐에 넣는다.

반숙으로 익히기.

밥 반 공기는 지리멸이 열기에 바스러지지 않도록 밥 속에 숨겨서 전자레인지에서 1분 남짓 돌리고요.


칸으로 나뉜 접시를 꺼낸다.

소시지는 한 입 크기로 잘라 담고 그 옆에 씨겨자 한 작은 술.

다른 칸에는 깍두기를 담는다.

따끈해진 밥과 지리멸도 한 칸에 덜어 계란 반숙을 올리고,

후리가케 뿌려서 간장과 참기름을 똑똑똑.

고추장도 반 작은 숟가락.


그래서 밥은 계란과 지리멸, 후리가케, 간장, 참기름, 고추장으로 대략 비벼서.

통통한 소시지 한 조각,

요것조것 뒤섞인 밥 한 입.

오물오물 씹어서 꿀꺽 삼킨 뒤에는 깍두기 한쪽.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네.


나는 한 그릇에 이것저것 섞이는 게 싫어서 나눔 접시에 덜었지만

요새 유행하는 덮밥으로 담아도 괜찮겠다.

오목한 그릇이나 뚝배기에 밥을 담아 지리멸을 뿌려서 전자레인지에 잠깐 돌리고요.

따끈해진 밥에 간장과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고추장도 조금 덜어서.

데쳐서 먹기 좋게 자른 소시지와 계란프라이는 밥 위에 얹는다.

깍두기는 따로 담고요.

소시지와 계란프라이에 고추장과 참기름의 조합은 무조건 맛있다.


홍차 한 잔,

사각사각한 햇사과로 마무리.

오늘 아침도, 만세!



어제 나갔다가 유명하다는 육개장을 먹었는데,

그냥 불그스레한 맑은 국물에 대파가 잔뜩 들어있는 다소 밍밍한 국물이었다.

맛이 없지는 않았는데 좀 낯설었다.

내가 어릴 때 먹은 음식점 육개장은 쪽쪽 찢은 소고기에, 대파에, 고사리, 숙주나물 듬뿍듬뿍 들어간,

기름기가 동동 뜬, 다소 운 국물이었는데요.


아주 맵거나 아니면 달착지근하고 맵지 않거나,

그렇게 양극단으로 고추 품종이 개량되어 온 느낌입니다.

고추장도, 고춧가루도, 김치도...

예전처럼 맵지 않아요.

반면에 아주 매운맛이 유행을 타기도 하고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맵질이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고추 맛이 변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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