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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20. 2024

우리는 불확실함을 디디며 살아가네

은이의 작고 예쁜 집

행사를 마치고 정산하는 중에 친구 하나가 말했다.

친구들끼리 쓰던 물건들을 바꾸는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했으니 가능했지,

일일이 돈으로 치렀다 이 예산으로 수준의 행사가 가당키나 겠냐고.

다들 맞다고,

돈으로 하려 들었으면 절대 못 했을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은이가 자려고 누워서 가만히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거꾸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반드시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는 일 중에 어떤 것 우리가 힘을 합쳐 직접 해낸다면,

돈을 들이지 않거나 더 적은 돈으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타산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면 훨씬 본질에 실할  있으리라.

좋아서 즐겁게 하던 일 돈을 벌어내야 하는 사업이 될 때 사람도, 내용도 얼마나 쉽게 변질되는가.

돈이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재화나 서비스의 교환 또는 그 가치를 표시하려 편의성에서 비롯되었을 텐데,

지금은 쓰임이 본질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사를 마무리하고 나니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기온은 들쭉날쭉하지만 냉기는 확실히 가셨.

은이는 긴 코트와 롱패딩을 세탁소에 맡기

초겨울에 붙여놓은 창문틀의 방한 테이프를 떼어버린다.

추위가 끝났으니 이제 가스비도 줄어들겠지.

그런데,

염이 재발했다.

속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며칠 이어지더니 한밤중에 지독한 복통으로 잠이 깨어,

쓰린 속을 부여잡고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렸는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드시는 대로 담백하고 순한 음식이 입에 맞아서 밖에서  자극적인 음식은 내켜하 않았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혼자 음식에 유난스럽기가 난처하여,

친구들 먹는 대로 달고 짜거나 니글거리고 걸쭉하며 맵거나 밀가루 거나 한 외식몇 달 동안 꾸역꾸역 삼켰더니 시달리던 위가 결국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밤새 고생한 다음날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속을 비워내면서 통증은 줄어들었고 이전의 경험으로 보아 한동안 식사를 중단하여야겠지만.

은이는 아무리 아파도 끼니를 거를 만큼 먹는 부분에 관해서는 참을성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라서,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간다.

잘게 다진 채소를 넣어 죽을 끓이거나 누룽지를  끓여서는,

계란찜이나 순두부, 명란젓 구이나 간장 양념을 한 삼치조림처럼 심심하고 부드러운 반찬을 곁들여서 매끼 꼬박꼬박 먹었다.

몸이 불편하니 집중력이 떨어져 책상 앞에 앉을 생각은 들지 않았고.

꼭꼭 씹듯이 읽어야 하는 무거운 책은 활자가 날아다닐 뿐.

몸은 축 늘어졌는데 덩달아 가만히 있어야 하는 머리는 따분해하여,

가볍고 재미있는 책이나 읽으려고 여행기와 소설 권을 주문했으나.

막상 읽어보니 소설은 지루하고 여행기는 경솔해서 책은 쌓아둔 채 음 틀어놓고 빈둥빈둥 누워서 휴대폰만 붙들고 지냈다.


휴대폰을 켜면 우수수, 광고가 쏟아진다.

읽지 않고 넘어가지만 하나하나 지우는 것도 일이라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픈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해? 은이는 분노의 클릭짓을 해댄다.

하지만 뿅망치를 아무리 휘둘러도 메롱 메롱 고개 쳐드는 게임기의 두더지처럼 상업의 힘은 참으로 집요하여.

때로는 우박이 쏟아지듯,

때로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시도 때도 없이 물량공세를 퍼부으니.

은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홀린 듯 주문해서 결제까지 마친 뒤였다.

당장 달려올 물건을 도대체 이 집 어디에 겨 넣느냐, 고심하다가.

언젠가 소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물건들이 어디엔가 고스란히 쌓이겠지, 멀뚱멀뚱 집을 둘러본다.

잔챙이라도 낚시에 성공한 상업의 힘은 의기양양했을 고.

자잘한 소비로 일상의 불안과 권태를 잠시 거둬낸 소비자는 다음 달 카드값이라는 부담을 스스로에게 으나.

그보다 이달 지불해야 할 카드값부터 막아야 하니, 만져보지도 못하는 가상의 숫자를 맞추느라 고심하겠지.



친구와 톡을 하면서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작업하려고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동네방네 선언했는데 시작도 기 전에 빈둥빈둥이로구나, 

부끄럽다고 하니 친구 말하길.

원래 계획이란 어그러져 제맛이고

약속은 깨려고 하는 거 아니냐?

계획이나 약속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희망의 표현뿐이지,라고 불량한 발언을 하네.

둘이 깔깔깔 한참을 웃다가,

마음 편히 갖고 몸부터 돌보라는 말이야.

신경 쓰면 위염이 낫지 않잖아?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은이의 조급한 기분을 다독였는지

은이는 금세 평소의 느긋한 자세되찾아서.

맞아, 계획은 다시 세우면 되지, 뭐.

어차피 내 보폭으로, 내 속도로 갈 길인걸.

길게 보자, 하면서 팔다리 쭉 뻗고 드러누웠다.


그나저나 생활비를 딱 정해두고 그 안에서만 살아야겠어.

지금까지 은이는 자신이 가치 중심의 소비를 한다고 믿어왔다.

필요하거나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기꺼이 돈을 쓰고.

남들이 다 쓰든 말든 은이 생각에 가치가 없다, 거나 관심이 없는 데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는 주의였다.

하지만 걸핏하면 이리저리 온라인   돌아다니다가 자잘한 물건들을 주문하는 요즘의 소비 행태를  때,

지출 총액을 빡빡하게 조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독립하고 반년이 가까워오는 시점의 총지출은 예상했던 생활비의 두 배 가까운 액수.

심각하군.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지.



까치가 다녀갔나, 반갑게도 -남매가 부활절 방학에 한국다니러 온다는 소식이 왔다.

연락하고 지내지만 직접 만나는 건 또 달라서 은이는 뛸 듯이 기쁘.

부모가 유학 중인 해외에서 태어나 초등학생 때 귀국한 영-선 남매는,

은이와 같은 아파트에서 함께 자랐다.

-선 남매의 할아버지와 은이 외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친한 친구 사이였고,

두 분은 은이 친할아버지의 중학교, 대학교 후배였으니.

그러니까 은이의 양가 할아버지와 영-선 남매 할아버지는 10대부터 평생을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다.

귀국해서 -선 남매의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게 되자,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해 적극적으로 손주들 육아에 나서게 된 영-선 남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은이네도 이사 오시라 권해서 세 아이는  집 저 집을 오가며 친남매처럼 자라났다.

은이보다 세 살 위인 영 오빠와 두 살 위인 선 언니는 처음에는 한국말이 어눌해서 학교 친구들보다는 은이와 더 어울렸고,

학교나 아파트에서 이 셋이 친남매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선 남매는 차례차례 해외 대학으로 진학했는데 

은이 보다 세 살 위인 영 오빠는 수학의 기초 분야를,

두 살 위 선 언니는 제삼세계 학을 전공한다.

회화를 하는 은이까지, 셋 모두가 취업이 힘들고

열심히 해도 물질적인 성공은 어려운 전공.

오빠도, 언니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자랐잖아.

어느 정도는 재능도 타고났고.

커서 보니까 그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더라고.

행운이었지.

정말 행운이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출세나 돈연연하지 않고 의미 있는 일에 재능과 노력을 쏟아도 돼.

어쩌면 행복한 성장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겠지.

왜 꼭 부자여야 하는 거지?

가난해지면 어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정정당당하게 살면 되는 거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공부로 적당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혹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해도,

별로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해야 한다고 믿은 일에 할 만큼 했으니까,

내 인생은 그거면 된 거야.



사람들이 돈에 연연하는 건,

우선은 편의와 소유를 얻기 위함이겠지만.

그걸 넘어서도 집착하는 데는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확실함, 반석 같은 안정감을 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래는 불투명하고 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세상은 흔들리고 늘 변해가지.

더듬더듬 출렁이는 어둠 속을 한 발짝씩 내딛는 현실의 끝에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돈이라는 분명한 힘에 의지하고 싶은 것이리라.


세 할아버지들은 세 손주들에게 말씀하셨다.

정해진 길이란 건 없어.

누구에게나 인생은 처음 가는 길이지.

지금 네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결국은  안에 차곡차곡 쌓이리니.

쌓인 그것들 길을 어 줄 것이다.


그래요, 할아버지.

불안이라는 격류가 흐르는 을 불확실한 희망으로 통, 통 건너가지만.

착한 마음으로 선한 일 하나, 둘, 셋...

차곡차곡 쌓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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