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 후다닥 밥 해 먹다
까르르르,
연신 웃음이 터진다.
반짝이를 붙이다가 키득키득.
여기 삐뚤어졌어, 라든가,
멀리서 보면 몰라, 티격태격하다가 우헤헤헤.
처자들의 명랑함과 유쾌함이 흘러넘쳤다.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냉장고에 있는 손질한 채소를 몽땅 프라이팬에 볶느라 바쁜 은이는,
"이리 좀 와봐!"라든가 "어떤 색이 더 나을지 봐줘."라며 수시로 은이를 호출하는 친구들 청에,
급히 손을 닦으며 부엌과 방을 들락거려야 했다.
어젯밤에 미역을 많이 불려두어 다행이야.
냉장고에는 소고기 장조림이 남아 있고,
맵고 짭짤하게 무친 멸치도 있지.
은이는 들기름에 다진 마늘과 미역을 볶아 코인 육수를 넣어 푹, 미역국을 끓이고,
냉동실 가자미 두 마리는 굵은소금을 뿌려 진즉에 미니오븐에 밀어 넣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숨이 죽은 양파, 마늘, 버섯과 고추에 계란물을 부어 마저 익히고.
이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이 완성되었으니,
"밥 먹고 하자."
친구들은 하던 작업을 옆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밥상을 편다.
어제 택배로 깃발을 배송받은 친구가,
뭔가 좀 모자라는 기분이야,라고 톡에 깃발 사진을 올렸다.
주문할 때는 비분강개해서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을 힘껏 휘두르려고 깃발을 주문했는데
막상 완성되어 보니 너무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하다는 거다.
해학을 더하고 귀여움도 끼얹어야 해.
야, 문과들, 재미있는 아이디어 좀 내봐! 하는데,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란다고 쏙 튀어나오겠나.
지금도 나쁘지 않아, 의미가 있잖아.
확실히 비장미는 있었다.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위협받은 마당에 헌법을 크게 외쳐야지.
내일은 이걸로 가고 다음에 재미있는 깃발 하나 추가하자고 얘기를 마무리하고,
결전의 순간을 위해 잘 자, 했는데.
오늘 이른 아침 다른 친구가 톡을 돌리네.
내게 스팽글, 레이스 같은 장식재료가 한 보따리 있거든.
깃발을 공주풍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숲 속에서 잠자던 공주님까지 도저히 이럴 수는 없다고 벌떡 일어났다는 스토리.
우리가 그 공쥬님들?
옴머나,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 셋이 은이 집에 작업하러 오게 되었다.
원래는 오후에 여의도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던 건데.
깃발을 꾸밀 디자인을 의논해서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뒤 실행은 친구들에게 맡기고 은이는 부엌으로 나왔다.
예정보다 이르게 집을 나왔으니 친구들은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겠지.
집회에 나가려면 먼저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한다.
강바람이 세찬 섬, 이 추운 날씨에.
캄캄해지는 저녁까지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몇 시간을 있게 될지 기약이 없잖아.
장 본 지 며칠이 지나 냉장고는 비어 가고,
음식을 만들 시간도 모자라지만.
은이는 친구들에게 뜨끈한 국물이 있는 든든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은이는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주로 숙소에서 쉬었다.
행사를 치르면서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상당히 심했던지 몹시 피로했거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서툴기만 한 일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고,
물건 나르고 청소하는 육체적인 일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선택할 것, 결정할 사안들이 매 순간 쏟아졌고.
친구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의논해서, 합의까지 이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심신에 피로가 쌓였고
몸 안의 기운이 모두 소진된 느낌이야.
쌓인 피로감은 텅 비운 시간으로 살살 풀어내야지.
이렇듯 친구들과 함께 한 놀이 같은 바자회 한 번을 치루기도 얼마나 무겁고 힘들진대.
무능과 불법,
탐욕과 무식,
부패와 비열... 의 종결자.
이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악한 권력자가 매일매일 저지른 혐의를 줄줄 읊을 생각은 없다.
내 입이 창피해지니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직무에 대한 이해도, 인식도 전혀 없는 부분이라고 은이는 판단한다.
국정이라는 업무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결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국정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알 생각도 없다.
내 주머니나 잔뜩 채우자.
나랏돈은 신나게 쓰기.
그저 술에 취하고, 호통이나 쳐대고, 그럴듯해 보이는 뭔가를 흉내내기에 급급할 뿐.
입만 열면 거짓말.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군대, 공직 체계, 의사 결정 과정에 더해 논의와 합의 같은 국가 운영체제를 완전히 박살 내버렸네.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개념은 아예 탑재조차 돼있지 않은 사리사욕으로 공직을 차지해 온 부류였다,
그가 속해온 무리들은.
정당하게 비판하는 올바른 이들을 짓이겨놓으면서 극단의 위협으로 정의를 파멸시키는 무도하고 횡포한 망나니.
온갖 저열한 인간들이 비루하게 날뛰는 행태를 실시간으로 목격해야 했던 괴로운 시간을,
제발, 비참한 이 현실을,
끝내자.
기필코 오늘은!
간절한 염원을 안고 우리는 국회로 간다.
# 친구들이 엄지 척한 이른바 "계란 범벅"
딱히 이름조차 없는 은이의 '내 맘대로' 음식에 친구들이 높은 점수를 주었다.
계란말이도 아니고 오믈렛도 아닌,
그저 흔해 보이는 이 반찬이 은근 맛있다네.ㆍ
냉장고에 남아 있는 채소를 이용하고,
비싸지 않으며,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아, 채소를 씻고 손질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집에서 쉽게 요리하려면 식재료가 먼저 손질되어 있어야 한다.
재료가 손질돼 있으면 조리는 쉽고 빠르거든.
양파, 양배추, 대파, 고추, 마늘, 버섯 같이 동서양 여러 음식에 두루 쓰이는 채소를 먼저 씻어서 잘라 두면,
샐러드도, 볶음밥도.
온갖 볶음, 조림, 찌개 같은 요리를 금세 만들어낼 수 있다.
"계란 범벅"은 쓰다 남은 식재료 처리에도 좋고,
융통성 있게 재료를 가감할 수 있는, 손쉬운 음식이다.
양파, 양배추, 당근은 가늘게 채 썬다.
매운 고추는 가늘게 썰고,
마늘은 얇게 편을 썬다.
표고버섯은 얇게 썰고,
느타리버섯의 경우 밑동을 잘라내고 한가닥씩 뜯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이상의 재료를 볶다가,
계란을 풀어 뒤섞는다.
입맛에 맞춰 간은 소금으로 한다.
(간장 양념의 경우 음식 색이 어두워질 수 있다)
위의 재료뿐만 아니라 호박, 쪽파, 부추 같은 채소도 잘 맞는다.
금방 만들었을 때 맛이 제일 좋지만 식어도 나쁘지 않음.
채소를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고,
없는 재료 빼고 있는 재료로,
재료끼리 조화만 이룬다면 어떤 채소로도 만들 수 있는 이 반찬은,
밥에도 좋고,
빵과도 잘 어울리는데.
특히 담백한 피타브레드 빵에 불고기와 함께 계란 범벅으로 속을 채우면 오, 맛있습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간절히 기도했다.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오늘부로 대통령 업무는 중지되었다.
첫 관문을 넘어섰다.
목청껏 탄핵을 외치고,
두 팔이 떨리도록 민주공화국 깃발을 휘둘렀다.
책임지는 성인으로 훌쩍 자란 기분이다.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시민으로서 내 몫을 하자.
세차게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한강 다리를 걸어가던 사람들.
혼자, 낱낱으로 점점이었던 사람은,
줄줄이 어어지는 선이 되었다가
광장을 꽉 채운 면이 되었다.
발 붙일 곳만 있으면 빽빽이 들어찬 남녀노소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감과 연대를 이루어냈다.
선결제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따끈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떡과 어묵을 나누었으며.
밥을, 핫팩을, 갖가지 일용품을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보낸다.
가족이 여행 갈 비용으로 버스를 대절해 쉼터를 제공한 젊은 부부가 있고.
해외에서, 국내에서,
제법 큰돈 또는 용돈을 털어 광장의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았다.
음료와 음식 선결제가 쏟아지니 이를 먹을 수 있는 곳들을 표시한 앱을 누군가가 만들어 공개했고.
몇몇 건물들이 시민에게 화장실을 개방하니,
또 누군가가 이용 가능한 화장실을 표시한 앱을 만들었다.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기쁨이 넘치는 축제였다.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들과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응원봉들.
오늘의 뿌듯한 장면들은 마음 깊이 새겨져 우리의 자부심이 되겠지.
좋은 나라를 이루고야 마는 그날까지 절대 지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