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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차려먹은 아침밥, 9편, 문어, 순두부

by 기차는 달려가고

2022년 마지막 아침이다.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면서 또 한 해를 보내는 이날,

뭔가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는데.

음,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다,

그냥 밥만 잘 먹기로.



삶은 문어를 얻었다.

야들야들 통통한 문어 다리.

아침부터 내가 좋아하는 문어를 먹겠다고

이미 익힌 문어와 브로콜리를 끓는 물에 한번 더 살짝 데쳐낸다.

옆에서는 국물 넉넉한 순두부를 끓이고.

나는 양념을 따로 하지 않는 하얀 순두부가 좋다.

이렇게 추운 날에 몽글몽글, 부드러운 순두부와 그 따끈한 국물(순두부가 담겨 있는)을 홀짝홀짝 떠먹으면 몸이 따뜻해지거든.


물 흐르듯 유연한 현악기 선율을 들으며 따끈하게 데운 순두부 한 술,

몰캉한 문어 한쪽 초고추장에 콕 찍어서 오물오물 먹고요.

쌉싸름한 브로콜리도 새콤 달콤 매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입안이 상쾌해진다.


그릇 씻고 쉬었다가

계속 음악을 들으며 녹차 한 잔 우려서 사과 몇 쪽이랑 먹고요,

미리 깎아놓은 단감도 몇 조각 꺼내 먹었어요.

음악 들으며 느긋하게 앉아있으려니 아주 아늑한 기분이 들어서

우유 따끈하게 데워 코코아 넣어 마셨네요.



이렇게 2022년은 사라져 갑니다.

2022년도 매일매일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하고, 바랐을 텐데요.

그렇게 365일을 보내고 난 지금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네요.

무념무상.

내 머릿속은 왜 늘 텅 비어 있는 건가?


언제나 밥은 잘해 먹었다, 는 사실을 남기고 2022년을 떠나보냅니다.

잘 가,

내 결코 서운해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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