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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 절집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불교신자는 아니다.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에 있는 절을 방문하게 되었다.

오래된 절은 대개들 풍경이 좋은 데다 문화재도 있다.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 삼배를 올리고 기도를 한다.

불교에 관심은 있고 호의도 있지만 신자가 될 의향은 없다.

몇몇 종단 권력자들의 행태가 싫다.


큰절에는 신도들이 다른 지역 절에 기도하러 가는 행사가 있다.

버스를 대절해 서울의 절에서 멀리 있는 절까지 곧장 가므로,

교통 사정이 불편한 절을 혼자 구경하려는 내게 이 행사는 아주 편리한 방법이다.

게다가 그렇게 가면 절밥도 먹는다!



당일로 다녀오기도 하고 먼 곳에는 늦게 출발해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데.

오래전에 무박 2일로 해남의 아마 미황사던가, 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초봄인가 늦가을인가는 확실하지 않은데 두꺼운 외투를 입는 계절이었다.

그래도 밤늦어 도착한 절은 굉장히 추웠다.

캄캄한 밤,

더듬더듬 가파른 길을 올라 새로 지은 듯한 사방에 문이 달린 목조건물로 들어갔는데,

방석을 깔고 앉은 마룻바닥에서는 사정없이 냉기가 올라오고.

벽도, 천장도 단열과 상관없는지

가져간 모든 것을 뒤집어썼어도 이가 딱딱 부딪치고 몸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추운 가운데 모두 여성들인 신도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켰고,

한참을 기다려 스님이 들어와 말씀을 나누셨다.

시간이 되어 새벽 예불을 드렸고,

드디어 아침 공양.

동트기 전 어둠 속에서 대웅전 뒤로 좁은 돌계단을 이리저리 올라가 밖이나 별다를 것 없는 추운 방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기다리다가 아침 밥상을 받았다.

상에는 소박한 반찬 몇 접시가 놓이고,

팔팔 김이 오르는 솥에서 막 떠낸 떡국을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받았다.

향긋한 표고버섯이 들어갔고,

김 부스러기가 뿌려져 있고,

간장 맛이 나는 담백한 국물은 다소 걸쭉했던 기억이다.

떡은 적당히 풀어져서 먹기에 부드러웠다.

얼마나 맛있던지 넓적한 대접 가득 담긴 떡국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단지 배고프고 추워서만이 아니라 그 절의 음식이 훌륭했다.

밥상에 올라있던 반찬이 다 맛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뭐였는지는 가물가물하고,

하룻밤 절에서 뭘 했던가도 아리송한데.

부드럽고 담백하며 따끈했던 격조 있는 떡국 맛은 지금도 혀끝에 남아있다.



절밥은 그래야 할 것이다.

겸손하고 수수하지만 정성스럽고 솜씨가 담긴.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가 모두 수행이니

간소하다 해서 함부로, 되는대로 할 일이 아니다.


속세에서 살아가는 우리 생활도 그렇듯 정결하고

손길 하나하나에 온마음을 쏟아

마침내 격과 품을 갖추고 싶다.

사라지는 매 순간에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이루어내는 인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간곡하게 기도하는 마음이 서려있는 곳에서 우리는

확실히 자신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고 언행을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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