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아, 이러다가 영업 사원이 되면 어떻게 하지?" 하고 막연한 걱정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중국어 전공에 복수 전공 국제 통상학과 - 말이 좋아 국제 통상학과이지 무역학과가 전신이었습니다. - 를 공부한 저는, 왠지 갈 길이 뻔해 보였습니다.
영업사원의 가장 큰 덕목이 술을 잘 마시고, 접대에 능해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이 부분에 재능이 없는 저는 전공을 핑계(?) 삼아 해외 영업 업무로 진로를 살짝 비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영업 업무도 경험해 본 지금 와서 보면 영업 업무 상 실제로 술 마시는 것보다 더 필요한 덕목이 있었습니다.바로 수적 감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50ml 제품을 판매하다가 100ml 제품을 판매하려면, 50ml 제품을 5,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100ml 제품의 가격을 산정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중학교에서 배웠던 50:5,000=100:X라는 비례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비례식은 내항의 곱 5,000와 100을 곱해서 500,000을 만들고 외항의 50X와 등호를 놓아줍니다. 즉 500,000=50X, X를 구하기 위해서 500,000에서 50을 나눠주면. 100ml 제품은 10,000원 정도에서 판매 가격 산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100ml를 구매해 주시는 고객에게는 어느 정도 이득(benefit)을 드려야 하기에 10,000원에서 원가를 감안 5% - 10% 정도를 할인해 주기에 9,000원 내지 9,500원의 판매 가격들 매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한 판매가 산정에, 비례식에 외항, 내항, 이항, 일차방정식까지 난리가 났습니다. 이 외에도 원가에 판매 수수료, 광고비 등을 포함 계산한 손익을 보려면 더 복잡하고, 꼼꼼하게 사칙 연산 및 일차방정식 등을 활용하여 검산에 검산을 거듭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해외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할 경우, 온라인 플랫폼 수수료, 내부 광고 비용 등 드러나지 않는 비용들을 찾기 위해 방정식 등 다양한 수식을 통해 촘촘히 손익 계산을 해야 손해가 발생하는 부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수학을 흔히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되니, 실생활에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수학에 특히 어려움을 겪었던 저에게 그렇게 위로(?)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진실로 돈 벌어먹는(?) 일에는 필요했던 것이 수학이었습니다.
전 직장에서 이와 더불어 영업 사원들이 내부 ERP 수금까지 직접 관여해야 했어서, 수적 감각이 더욱 요구되었습니다. 어느 날 채용 공고의 모집 요강을 적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영어 실력 무관, 수적 감각 뛰어나신 분"이라고 썼다가 너무 했지 싶어, 정정합니다. "수적 감각 있으신 분 우대" 면접에서 수학 문제를 낼 수도 없고, 검증 방법도 없으니까요.
회사에서 여러 수식 걸고 계산하면서, 혼잣말을 내뱉습니다. "진즉에 계산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하고, 수학을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가 대꾸해 줍니다. '그래도, 서울대까지는 못 갔을 거야. 생각은 바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