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포틀랜드, 또다시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한달살기
2016년 4살 겨울 제주 애월에서, 2019년 7살 가을 미국 라라랜드&포틀랜드에서 한달살기를 했습니다. 2026년 14살 여름 아프리카 케냐에서 한달살기를 할 예정입니다. 물론 그 전에라도 기회가 되면 또 다녀오겠지요. 낯선 곳에서의 한달살기를 통해 엄마와 아이 모두 한 뼘씩 성장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딸을_위한_버킷리스트
2013년 여름의 입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을 만났다. 엄마의 딸로 36년을 살았지만, 딸의 엄마가 된 1일은 낯설었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생각하니 두근거렸다. 처음엔 열 달 동안 아이에게 보여주고 늘 불러줬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에델바이스'와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랬다. 작고 가냘프고 여려 보이지만 강하고 씩씩한 에델바이스 꽃처럼. 지금도 자장가로 이 노래를 불러주며 에델바이스 가사처럼 살길 기대한다.
그렇게 엄마의 꽃인 딸을 위해 매일 밤 꿈꾸기 시작했다. 딸을 위해 엄마가 해주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7세엔 디즈니랜드, 14세엔 아프리카 사파리 어떨까?
디즈니랜드와 아프리카 사파리
#7살이니까 #디즈니랜드
아이가 7세가 되면 디즈니랜드를 가기로 맘먹었다. 디즈니 만화도 캐릭터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나이, 세상 모든 공주를 사랑할 나이, 그리고 엄마 아빠와의 여행을 즐길 나이 … 이 모든 걸 종합해보면 7세가 딱.
초등학교 가기 전에 아이와 많이 놀고 새로운 꿈과 희망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디즈니랜드를 다녀오면 왜 전 세계 사람들이 디즈니랜드에 몰리는지, 그 사람들이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미키마우스와 인사를 하려면 hello라는 영어를 쓴다는 걸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아쉽게도 아직은 지구에 통하는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가 필수는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 중에 하나라는 걸 말보다는 상황으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그런데 4살까지 아이는 공주를 싫어했다. 주변 어르신들이 '아이고 예쁜 공주님이네'라고 인사를 건네 오면, 딸은 울면서 답했다. '난 공주 아니야! 난 꽁이야! 공주말고 꽁이할래.'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최고 단계에서 이 아이에게 공주는 어떤 의미인가 궁금했다.
5살 가을이 되면서 딸에게도 불치병이 찾아들었다. 일명 '핑크 공주병'.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핑크로 풀착장을 해야 하며, 모든 공주를 마음으로 보듬는 것을 넘어서 내가 그 공주들 중 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공주계의 불문율 말이다. 그 후 핑크 공주 코스프레를 위한 끝없는(^^) 쇼핑이 시작되었다.
엘사로 시작된 공주 사랑은 더욱 커져 6살이 되어서는 디즈니랜드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7살 디즈니랜드 버킷리스트는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14살_사춘기_성장통 @아프리카
왜 14살에 아프리카를 선택했는지에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일전에 아프리카 사파리 어디에 기린이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하며 아침 인사를 건네는 호텔이 있는 걸 보았고, 밤이면 물가에 모여든 코끼리, 기린, 얼룩말 등 사파리 동물들이 조용히 달빛 아래에서 물을 먹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였던 거 같다. 이 황홀한 순간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것.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대도시가 아니라 정말 원초적인 아프리카 사파리를 14세에 가는 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성적에 친구에 미래에 불안해할 딸을 위해 좀 더 큰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파리 속 먹이사슬의 구조 보다 서로 다른 동물들이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라이온 킹 애니메이션의 'Circle of life'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춘기 때 큰 경험을 하고 오면 한 뼘 더 커지지 않을까.
아프리카를 생각보다 더 일찍 가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춘기가 빨라지기도 하고, 나의 나이와 신체적인 컨디션도 고려해야 하니까. 건강히 잘 다녀오기 위한 플랜을 세우고 실행해야겠다.
#버킷리스트에포틀랜드더하다
그럼 나를 위한 버킷리스트는? 나에겐 딸 엄마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나의 인생도 소중하다. 이번 생은 나도 처음인데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해야 하니까. 그때 당시 나의 버킷리스트는 포틀랜드였다.
아이가 클 무렵 디즈니랜드에 들렸다가 포틀랜드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틀랜드는 내가 꿈꾸는 인생 여행지였으니까. 그런데 왜 포틀랜드였을까? 스텀프타운 커피 때문에? 에이스 호텔 때문에? 킨포크 열풍 때문에?
당시 나는 모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잠시(?) 소속되어 있었다. 여러 회차를 거쳐 브랜드 리바이탈라이징을 하고 있던 과정에 포틀랜드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다. 좋은 말로 벤치마킹, 나쁜 말로 따라 베끼고 있던 브랜드 콘셉트, 디자인 등 모든 가이드라인이 포틀랜드의 모 브랜드에게서 온 거라는 걸 알고 포틀랜드를 검색하고 있었다. 제3의 커피 문화, 수제맥주, 그리고 와이너리 … 이 모든 걸 가능케 한 Weird 한 도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그곳 포틀랜드에 막연히 가보고 싶었다.
싱글일 때 미국여행으로 뉴욕을 3번, 시카고를 2번, 시애틀을 1번 갔는데 계속 여운이 남는 곳은 마지막에 들른 시애틀이었다. 그런 시애틀에서 조금 아래 떨어진 오리곤 주의 포틀랜드라는 작은 도시가 뇌리에 꽂혔다. 꼭 가봐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