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포틀랜드, 또다시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한달살기
2019년 7살 가을 미국 라라랜드&포틀랜드에서 한달살기를 했습니다. 인생 플랜에 없던 제주 한달살기를 2016년 4살 겨울에 연습 삼아해보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고 할까요. 제주는 엄마와 아이를 씩씩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
성공적인 한달살기를 위해 많은 엄마들이 계획을 짠다. 왕복 항공권+숙소+차량비+식비+생활비 등을 고려하면 제주도 한달살기에도 꽤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육지 집에 두고온 가족이 있을 경우, 그 집 관리비, 생활비도 고려해야 한다. 나 역시 평균 한달 생활비보다 2배정도 더 들었다. 인풋 대비 아웃풋을 따지기 시작하면 한달동안 일정표 짜기와 수정하기로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계획은 느슨하게 짜야 한다는 게 나의 여행 가치관이다.
#1일1모래놀이
아침에 눈을 뜨면 제주기상청 사이트에 접속해 기온, 풍향, 풍속과 눈비 예보 등을 체크했다. 첫 일주일을 꼬박 곽지과물해변으로 나갔다. 거기엔 놀이터가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 제격이다. 이후 인근 애월로, 한림으로 옮기고, 서귀포, 함덕, 제주시, 인근 섬 등으로 발길을 넓혔다. '제주는 섬이고 바다는 다른 모습이니까'라고 설득하며...
매일 하는 모래놀이에도 변화가 있다. 어디 바닷가이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노느냐도 중요하다 모래놀이 장난감으로 놀거나, 중장비차와 트럭으로 공사 역할극을 하거나, 바다가 준 선물들인 소라게, 거북손, 보말, 조개껍데기, 그리고 미역줄기들을 활용하면 소꿉놀이가 된다. 겨울이어도 선글라스는 필수고, 날씨 상관없이 놀려면 우비, 장화도 필요하다. 겨울이 모래놀이하기 나쁜 날씨는 아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 장난감들이 모두 날라가는 날도 있지만, 봄날처럼 따뜻해서 맨발로 모래 위를 거닐고 용천수가 퐁퐁 올라는 곳도 들어갈 수 있다.
#잠시내비를꺼둔다
이동하는 길도 첫 일주일은 내비게이션만 쳐다봤다. 서쪽 도로가 익숙해지고 중간산 길을 다녀본 뒤, 빠른길 보단 예쁜길을 가기 위해 지도를 이용했다. 그래야 더 제주스러운 길을 볼 수 있으니까. 한라산 1100도로, 516도로와 해안도로는 정말 절경이다. 모래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잠이 들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드라이브를 했다. 한달살이가 주는 느림의 미학은 운전도 변화시켰다. 오랜만에 들은 재주소년, (제주사시는♡) 루시드폴, (저 멀리 북쪽 섬에 사시는) Kings of Convenience의 음악은 제주에 어울렸다.
#제주 #팜투테이블
아이의 1일1모래놀이 덕분에 엄마는 1일1까페 또는 1일1맛집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아이와 모래놀이를 하고 인근의 제주스러운 까페나 맛집을 다니면 하루가 풍성해졌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려해 제주의 재료로 차린 식탁을 찾았다. 흔히 말하는 맛집들은 휴무일, 영업시간, 예약 유무도 다 다르고, 막상 찾아가면 폐업(?)한 곳도 꽤 있다. 미리 검색을 하거나, 전화로 확인 후 찾아가는 것이 좋다. 보말죽, 성게 미역국, 우럭구이, 흙당근 감자 브로콜리가 푸짐했던 카레, 딱새우 누들, 제주콩 된장국, 흑돼지 돈가스, 짜장면... 아이는 제주에서 참 잘 먹었다.
그리고 근처 제주 오일장이 열리면 일부러 들렸다. 제주도는 오일장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도민 외에 육지에서 온 이민자나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장바구니, 락앤락, 텀블러 같은 물통을 지니고 다니다가 시장에서 파는 먹거리 등을 담아오면 유용하다. 제주에서도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제주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는 생각보다 불편하다. 늘 차 트렁크에 분리수거용 박스를 태우고 다니다가 기회가 되면 정리했다. 그 수많은 쓰레기들이 아름다운 제주를 오염시키기 전에 장 볼 때 다회용기를 사용하길 권한다. 아이 앞에서 엄마가 애국자가 되는 느낌은 보너스!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맛집은 제주유랑이었다. 제주에서 인기 있는 푸드트럭 중의 하나였는데, 푸드트럭 SNS를 팔로우하며 동선을 맞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유랑이가 제주 서쪽을 오는 날이면 여길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쉬고 있는 제주유랑, 우리의 인기 디저트였는데... 그립다. 다행히도 유랑 청년이 제주도에 다시 돌아온 듯 하니 기다려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