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포틀랜드, 또다시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한달살기
2016년 4살 겨울 제주 애월에서, 2019년 7살 가을 미국 라라랜드&포틀랜드에서 한달살기를 했습니다. 다음으로 아프리카 한달살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연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모르지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 글에서 전합니다. ^^
#육아휴직이라_가능했을까?
돌 지난 아기를 놔둔채 밥벌이행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엄마의 아침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가능한 한 아기가 자는 중에 소리 없이 준비하고 몰래 나와야 출근길이 무사하다. 엄마의 빈자리를 귀신같이 눈치채는 아기는 엄마의 부재를 서러운 울음으로 표현한다. 그 몫을 친정엄마에게 맡긴 채 나는 현관에서 부리나케 신발을 신고 매몰차게 현관문을 닫았다. 일하러 가야 하니까...
회사를 다니는 건 예전이랑 같은데 내 처지가 달라져 있었다. 직장 내 '맘충'이 되어버린 것. 야근도 마음(?)대로 못하고, 회식도 못 가고, 내 연차는 언제나 아이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소진되는 삶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점점 자판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빨리 소모되어 언제든 오류가 날 수 있는 기계였다.
어느 아침 출근길 나는 내 삶이 마치 브레이크 고장 난 차를 운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운전대 핸들을 힘주어 꼭 잡고 있어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목, 어깨, 등 그리고 발끝까지 긴장해 굳어진 몸을 이끌고... 운전하는 기분. 운이 좋게 저속 주행이 가능한 길을 맞딱들이거나, 아니면 사고가 나서 강제로 차를 멈춰야 하는 상황 이 두 개만이 내 앞에 남아 있었다. 운전을 잠시라도 멈추고 휴식한 뒤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그때 '육아휴직' 이 4글자가 나에게 희망고문으로 다가왔다. "그 육아휴직? 애 낳으면 주는 육아휴직이 아이 나이 만 7세까지 쓸 수 있는 거라고요?" 나는 물었고, 대표님은 "응 너도 육아휴직 안 썼으니 해당이 되지."라고 무서운 답을 하신 거다. 맞다. 나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임신 전에 퇴사했고 임신&출산으로 2년 정도 쉬고 있다가 재취업한 케이스였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나에게도 희망길이 열린 거다. 정확히 말하면 희망을 가장한 헬게이트 오픈.
희망고문을 당하며 일하던 중 아이가 세돌이 지나면 육아휴직을 짧게라도 몇 달 쓰고 싶다고 회사에 요청했다. 그때 나는 진정 살고 싶었다. 고장 난 차를 계속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멈춰 수리하든, 새로 바꾸든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아이가 4살이던 가을과 겨울에 육아휴직 1년 중 4개월을 먼저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육아휴직에 흥분한 나머지, 마침 신문 기사로 뜬 제주도 한달살기를 보고 나도 덜컥 예약, 결제해버렸다. 신랑과 상의도 없이.
#연습삼아_제주한달
겨울방학 전 11월과 12월은 제주도 비수기이다. 한달살기 집들 중에 11월과 12월 예약 취소분이 있기도 하고, 할인해주는 경우도 있다. 운이 좋게 아이와 엄마가 느리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레이지마마의 원룸을 구했다. 레이지마마의 가장 큰 장점은 한달간 여러 가족이 모여 공동육아를 한다는 것이다. 조랑말까페엔 엄마와 아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마당에서 퀵보드를 타고, 대형 트렘플린에서 땀이 나도록 뛴다. 한 달간 머물렀던 곽지가 나의 두 번째 친정 같은 곳이 될 줄이야.
수월한 한달살기를 위해 차에 짐을 실어 출발 전날 탁송 서비스로 제주에 먼저 보냈다. 단초롭게 아이의 장난감 가방만 들고 김포에서 제주로 이동했다. 숙소와 차가 준비되었으니 제주에서 사는 건 현지에서 고민하기로 했다.
#입주1일이니까 #모래놀이
레이지마마에 도착한 첫날부터 곽지과물해변으로 향했다. 전날 출발한 차는 기상악화로 우리보다 한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비가 온 뒤여서 춥고 강풍이 불어 모래가 심하게 날리는데도 장난감 가방을 꺼내 바다로 달려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린 매일 모래놀이를 나갔다. 바로 앞 곽지로 갈 때엔 큰 모래놀이 가방을 들고 걸어 다녔고, 조금 떨어진 곳을 갈 땐 차에 실어 이동했다.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다양한 걸 해보고 싶었지만 4살은 달랐다. 좋아하는 하나의 놀이를 집중해서 꾸준히 하는 걸 좋아한다. 부모는 아이가 '또 해줘'라고 무한 반복시킬 때 '이 아이가 행복하구나'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 1일1모래놀이 해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