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1 추웠다 따뜻했다 추웠다
* 1703일째 드로잉 : 함께 뛰는 마음.
- 지난밤 속상한 일이 있어 잠이 오지 않았는데 룽지가 어찌 알고 배 위에 올라와 골골송을 불러 주었다. 꾸리도 미어캣 모드로 문 밖을 주시하며 보디가드를 자처했다. 차분한 반려인의 목소리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주변의 온기로 마음을 다독이며 어디선가 날아온 짱돌에도 상처받지 않을 결계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 룽지가 증량에 성공했다. 요 며칠 관찰한 결과 꾸리가 밥 먹을 때 따라먹고, 반려인이 아침 먹을 때도 따라먹고, 내가 식탁에 앉을 때도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에 비례해 활동량도 증가했다. 새벽마다 화장실에 따라 들어오고, 꾸리가 안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따라 부르며, 반려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동참을 시도한다. 학습의 결과 성량이 풍부해지고, 눈치가 늘고, 달덩이만 한 엉덩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중 당연히 엉덩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안을 때마다 커다란 인절미를 만지는 기분인데 덩달아 고양이가 되고 싶은 기분이다.
- 모처럼 산책을 다녀왔다.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알람 전 기상이다. 쫄쫄이 내의에 기모 레깅스까지 야무지게 껴입고 우주복 같은 겨울 패딩도 꺼내 입었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불속 낙원에서 벗어나 공원으로 갔다. 못 본 사이 나무들의 탈모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었다. 매섭고 혹독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기기엔 이만한 계절이 없다고 했다. 중력과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부질없이 떨어진 낙엽에 눈이 갔다. 나무 밑동마다 수북이 쌓인 잎들을 보며 저건 뿌리를 지키기 위함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리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아버지가 된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들을 흔들며 본질에 집중하라고 말해주었다.
- 어떤 공격은 방어에서 시작된다. 욕망은 욕망을 부르고 가진 자들은 가진 것들을 잃지 않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약자를 억압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도, 대통령이 다른 언론과 정치세력을 억압하는 것도, 사장이 직원들 닦달하는 것도, 부모가 자식에게 집착하는 것도 모두 앞서 가진 자들의 불안에서 비롯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잃을 게 있다는 건 사방이 적으로 보이고,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위태롭게 만든다. 소유는 집착을 부르고, 집착은 번뇌를 부르고, 번뇌는 갈등을 부르고, 갈등은 전쟁을 부르고, 전쟁은 파멸을 부른다. 그중 무해하고 다정하고 이로운 것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야 하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 오늘의 할 일 : 자전거 마트 기행. 방앗간 드라이빙스루를 이용한 찹쌀떡 픽업. 칼제비와 소룡포를 떠올리며 만둣국 끓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