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 바람 바람

250702 덥고 흐림

by 최집사



어제만 해도 새벽이면 선선한 바람이 불었는데 오늘은 살벌하리만치 고요하다. 아침부터 앞자리 수 3을 찍은 온도계와 발 밑에서 녹아버린 두 냥이들. 오늘이 7월 2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양치를 하고 나오니 철야를 뛴 선풍기가 눈을 흘겼다. 무리한 잔업을 시킨 거 같아 보너스라도 챙겨줘야 하나 싶다. 가볍게 운동을 하고 주방으로 가 밥을 차렸다. 누룽지를 차리기엔 다소 민망한 날씨지만 반려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메뉴라 소신을 가지고 가스불을 켰다. 뜨겁다면서도 말끔히 순삭한 냄비에 요거트나 샐러드를 내놓을까 하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래도 아침엔 속이 따뜻한 게 좋겠지… 뒤이어 나도 밥과 약을 챙겨 먹고 물에 적신 손수건을 목에 둘렀다. 베테랑 농사꾼처럼, 공사장 인부처럼 하루 중 가장 선선한 시간을 집을 돌보는데 할애했다.


슬슬 해가 뜨기 시작하자 더운 공기가 밀려왔다. 서둘러 동쪽 창의 커튼을 닫고 서쪽 창을 열었다. 공기 통로를 조절해 바람을 만드는 나만의 비법이다. 해를 등지는 쪽의 창을 활짝 열고 더운 쪽의 창을 조금만 열면 그 사이 공기가 통과하는 속도가 빨라져 바람이 불게 된다. 습도가 높지 않다면 베란다 바닥에 물을 뿌리기도 하는데 그럴 땐 의식적으로 계곡에 왔다 상상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신박한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 점심 먹기 전까지 전기 1도 안 쓰고 자연 바람을 쓀 수 있다. 오랜 세월 같은 집에서 머문 덕일까, 계절을 보내는 요령이 차곡차곡 늘고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 방마다의 온도와 습도를 느끼며 계절을 심도 있게 누리는 기분도 낸다. 처음 이사 올 땐 남향의 집이 아닌 게 불만이었는데, 온난화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엔 오히려 복이지 싶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름 품어주던 집, 욕망덩어리였던 나를 어느새 온화한 집순이로 길들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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