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눈.
20년 전 그날, 성당에서 군종병에게 인스턴트커피와 초코파이를 얻어먹으며 춘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또렷하다. 근처에 가로등이 있어 하늘을 올려다봐도 별은 보이지 않았다. 꽤 추운 날씨에 종이컵에 담긴 커피 온도로 손을 녹이며 움츠러든 어깨를 한 내 모습이 그려진다. 스포츠머리에 잘 부러지지 않는 멋없는 뿔테 안경을 끼고 하늘의 어둠처럼 막막한 미래에 주눅 들어 있던 내 모습.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년 2개월이란 시간이 지난 후 내가 걸어갈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던 건 분명하다. 그때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의 내 모습도 생각하고 있진 않았을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땐 아마 지금쯤이면 내가 현재 밝고 있는 과정의 결과를 이루었으리라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지나온 20년은 그렇게 어긋난 삶을 산 것도 아니겠군. 조금 늦었지만 난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함박눈이 내린다.
지난달 23일에 잠깐 흩뿌린 눈을 본 후로 올해 두 번째 눈이다.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그런 눈이 아니다. 꽤 많이, 그리고 꽤 오래 남아있을 것 같은 눈이 내리고 있다. 함박눈이 소리를 붙잡아서 세상이 조용하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잠시 바라보다, 이 글을 쓴다.
오늘은 20년 전 내가 군대에 간 날이다. 2001년 12월 18일에 지금은 사라진 춘천 102 보충대로 입소를 했으니 정확히 20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군 시절 생각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걸 모두 지우고도 남을 좋지 않은 기억과 상처가 더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에서 보냈던 2년 2개월의 시간은 춘천 102 보충대에서 바라봤던 밤하늘처럼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역한 후 난 군 생활과 관련된 꿈도 지금까지 한 번도 꾸지 않았다. 남들은 군 시절 꿈을 악몽으로 꾼다고 하던데 나는 정말로 한 번도 없었다. 뭐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
몇몇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도 분명 존재하지만, 남들에게 말하고 싶진 않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간직해야지.
아직 오후지만 눈이 내려 주변이 어둑어둑하니 해 질 무렵 느끼는 쓸쓸함과 설렘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누구라도 불러 따뜻한 국물에 술잔을 기울이고 싶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그냥 꾹 참고 벌 받는 아이처럼 참고 견디는 중이다. 글을 좀 써볼까 했는데 마음이 이러니 제대로 된 글도 쓰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갈 수 있는 이 글을 쓰며 토요일의 오후를 보내는 중이다.
이 글을 다 쓰면 오랜만에 눈을 맞으며 걷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2021년의 12월 18일은 눈을 맞으며 걸은 날로 기억되겠구나. 그것도 나쁘지 않지. 1년에 하루 정도는 이런 날도 있어야 그게 사는 낙이지. 걷다 보면 생각도 좀 정리될 수 있겠지? 그럼 자기 전에 정리된 생각을 다시 글로 좀 옮기자. 이제 2021년도 2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천천히 되돌아보며 조금 더 성장한 내 모습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2022년에 다시 걸어갈 길을 가늠해야지.
앞으로 2주일 동안은 2021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의미 있게 보내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