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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엔 결혼했을 줄 알았는데

14화. 예상과는 다른 삶, 그래도 괜찮은 지

by 딩끄적

중학생 때,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언제 결혼하고 싶어?"

"음... 스물여덟쯤? 너는?"

"나는 스물다섯! 난 빨리 결혼할 거야."


그 친구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했고, 정말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결혼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어쩐지 그 말이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딱히 언제 결혼하고 싶다는 기준이 없었다. 스물여덟이라는 대답도 그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뒤, 서른이 되기 전에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막내인 나를 서른에 낳으셨다. 그 시절, 주위 어른들을 보면 모두들 30대엔 누구나 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순서인 줄 알았으니까.


생각해 보면, 내 결혼보다 더 기다렸던 건 언니의 결혼이었다.

"내가 대학생쯤 되면 언니가 결혼하고, 나에겐 조카가 생기겠지?"

조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조카랑 놀이공원도 가고, 여기저기 함께 놀러 다니고 싶었다. 언니 없이, 조카랑 단둘이. 결혼은커녕,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조카를 상상하며 살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느낌이 왔다.

'내가 20대 안에 결혼하진 않겠구나.'

'조카와 노는 계획도, 언제 실현될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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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카에 대한 로망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시선은 점점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20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30대 초반엔 결혼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만난 언니들을 보며 30대 초반은 어른 같았고,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그 나이가 되면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이 가까워졌을 무렵, 결혼에 대한 생각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건 아빠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바라본 아빠는 본인 밖에 모르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으로서도, 아빠로서도' 자격이 없었다. 엄마는 "그래도 너희가 있어서 행복했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저런 남편 만나느니, 평생 혼자 살 거야.'

'남자 잘못 만나 고생하느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야지.'


누군가 소개팅을 해주면 만나긴 했지만, 결혼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상대가 아무리 나를 좋아한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는 꽤 오래 이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에 알콩달콩 잘 사는 언니들을 보며 결혼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하지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꼭 해야지'도 아니었고 '아기를 낳고 싶다'는 마음도 딱히 들지 않았다. 그냥 뭐, 하게 되면 하고 낳게 되면 낳고. 결혼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지나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35세부터 '노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즈음 부인과 관련한 수술을 받으며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싹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병원 교수님은 진료 때마다 잔소리처럼 말씀하셨다.

"빨리 남자를 만나요. 그래야 결혼하지."

나는 웃으며 장난처럼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은 조금씩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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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서른다섯이면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저 몸만 큰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시절 내가 봤던 어른들도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을까?'


30대 후반인 된 지금.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지도, 쫓기지도 않는다. 내 삶은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바쁘고, 자유롭고, 꽤 괜찮다. 비슷한 삶을 사는 친구들이 곁에 있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난 지금의 내 삶이 정말 좋아. 이 삶을 유지하고 싶어."

"지금 내 일만으로도 벅차서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없어."


결혼이 늦어진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다양해진 것이다. 예전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정답'이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빛을 내는 시대다.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 '그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아직 혼자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예상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틀린 삶을 사는 건 아니다. 그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내가 원할 때, 마음이 닿는 사람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다 보면 그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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