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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을 적는 건 나를 찾는 과정이다

16화. 종이에 적어 내려간, 내가 원하는 이상형의 모습

by 딩끄적

"이상형이 뭐야?"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수도 없이 주고받았던 질문이었다. 돌아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이성 친구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이상형을 찾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상형은 나이와 때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상형을 정하는 기준은 참 다양하다.


가장 쉬운 기준은 드라마 속 주인공에서 찾는 것이다. 요즘은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을 이상형으로 많이 꼽지만, 한때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식이'를 이상형으로 꼽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여친에게 수도 없이 흔들리고, 미운 말을 툭툭 내뱉던 삼식이를 왜 좋아했나 싶지만, 그땐 나쁜 남자가 좋았던 것이다. 그 시절의 분위기는 그랬다. 지금 '양관식' 같은 따뜻한 사람이 대세인 것처럼.


친구들을 따라서 외적인 모습만 이상형으로 볼 때도 있었다. "나는 키가 크니까, 남자는 무조건 180cm 이상이었으면 좋겠어. 운동 좋아하고, 슬림했으면 좋겠고, 수트도 잘 어울렸으면 좋겠어. 운동복도, 캐주얼도 찰떡이면 좋겠고. 아! 손이 크면서 예쁘면 더 좋고!"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외적인 걸 따질 필요가 있었나 싶다. 사람의 겉모습보다, 결국 내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외적인 걸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잘생긴 사람을 원한다기보다는, 내 눈에만 잘생기면 된달까? 객관적인 잘생김이 아니라, 내 눈에 예뻐 보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차피, 제 눈에 안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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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여자 연예인이 자신의 이상형과 결혼하게 되었다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배우자상을 종이에 쭉 적었어요. 그리고 그걸 보며 매일 기도하고, 새벽기도에 나갔어요."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성당에 다니는 나는 이 말에 솔깃했다. 나도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었다. 책상에 앉아 노트와 연필을 꺼내 들었지만, 막상 적으려니 뭘 적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딱 한 가지만 적었다.


'담배 안 피는 사람.'


노트를 덮었다. 충분히 고민해 보고 다음에 다시 쓰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고, 배우자상이라는 말조차 잊은 어느 날. 우연히 노트를 보다가 그때 쓰다 만 글을 발견했다.

'아, 맞다. 그때 적으려다 말았지.'


이번엔 끝까지 적어보기로 했다.

'담배 안 피는 사람. 머리숱 많은 사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웃음 코드가 맞는 사람. 키가 176cm 이상인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예의 바른 사람. 같은 종교인 사람. 성실한 사람.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


생각나는 대로 일단 적었다. 그 이후에도 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추가하고, 욕심이 과하다고 느끼면 조금씩 지우고 수정했다. 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나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단순히 '티키타카가 맞는 사람', '키가 큰 사람'처럼 겉으로 보이는 기준만 생각했다면, 이 과정을 통해 내게 정말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적은 배우자상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믿었다. 원하는 이상형을 다 적었고, 기도까지 하고 있으니, 100% 충족하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100% 부합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도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켜가는 과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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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과정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 같다. 누가 됐든, 꾸미지 않은 내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키가 조금 작아도, 웃음 코드가 조금 달라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배우자상을 적어보는 건, '완벽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미혼이라면, 한 번쯤 원하는 배우자상을 적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고민해 본 그 순간부터, 내 삶에 조용히 스며들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의 삶에 조용히 스며들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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