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나를 위한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
스마트폰 캘린더 앱에 일정이 꽉 찰 때마다 뿌듯했던 시절이 있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빼곡하게 잡힌 일정을 보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내가 괜찮아 보였고, 스스로도 그런 내가 좋았다. 그러다 어쩌다 약속을 잡지 못해 달력에 빈칸이 늘어나면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주말에 아무 약속이 없다니, 집에서 뭐 하지?" 하는 불안이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캘린더에 빈칸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히려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와 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하루. 그 하루는 마치 선물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계획해보기도 했다.
예전의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이 없으면 괜히 외롭고 쓸쓸했다. '내가 이렇게 친구가 없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약속 없는 주말이 다가오는 평일엔 연락처 목록을 뒤적이기 바빴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말을 온전히 혼자 보내는 건 어딘가 불편했다. '쉼'보다는 '쓸쓸함'이 더 크게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그땐 쉬는 날엔 무조건 누군가를 만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내 인생의 큰 장애물 앞에 마주한 어느 시기.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만날 수도, 마음을 나눌 수도 없었다. 그저 나 홀로, 묵묵히 버텨야 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와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엔 너무 심심하고 지루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내가 세운 목표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그런 고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버텨야만 했던 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을 회복하며 조금은 더 단단해진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2020년 1월, 코로나가 터졌다. 이번엔 모두가 강제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겪어본 터라, 예전처럼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이번엔 뭘 해볼까?'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쓰고, 책을 읽고, 베이킹을 하고, 칼림바를 배우기도 했다. 관심이 가는 건 무엇이든 도전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시간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면을 채우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어떤 시간보다 의미 있고 값진 시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난 약속이 없는 주말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더 이상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찾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도 물론 소중하지만, 나만의 시간 속에서 충전되는 에너지가 주는 행복도 크다는 걸 느꼈다.
약속이 있어야만 좋은 주말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조금씩 인생의 방향을 정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약속을 아예 만들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이제는 억지로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전과 달라진 점은, 예전엔 주말 내내 약속을 잡았다면, 지금은 꼭 하루는 나만의 시간으로 남겨두려 한다는 것. 그 하루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좋아하는 취미를 하며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약속이 없어도 좋은 주말.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