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괜찮은 날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게 있다면,
그건 단연 건강이다.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혼자 사는 게 편하겠어요.”
하지만 그 말에는 숨은 조건이 있다.
“건강할 때만.”
대한민국은 2년에 한 번,
국가가 건강검진을 제공한다.
한때는 ‘공짜니까 나중에 하지 뭐’ 하고 미뤘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
지금은 괜찮다는 안일함,
별일 없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렇게 몇 번은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검진 시기를 일부러 챙기게 되었다.
어느 날은 허리가 당기고,
또 어느 날은 위장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피곤한 날들이 반복되면서
몸이 말해줬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혼자 살며 아프면 정말 슬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주저앉는다.
침대에 누워 해열제를 삼키며
텅 빈 거실을 바라보는 순간,
‘이럴 때 곁에 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물론 평소에는 괜찮다.
혼자는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며,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행복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자유가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없을 때.
그때서야,
혼자인 삶의 진짜 고요함이
현실로 다가온다.
한 번은 정말 아팠다.
감기려니 했는데,
며칠을 끙끙 앓다가 결국 응급실까지 갔다.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병원 침대 위에서
휴대폰 연락처를 넘기다 멈췄던 순간.
“이 시간에 연락해도 괜찮은 사람”
그 한 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서글프고, 참담했다.
그날 이후로
‘건강’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진심을 담게 됐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드는 날은
늘 기분이 묘하다.
봉투 하나에 담긴 숫자들이
어쩌면 앞으로 몇 년의 삶을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간 수치, 혈압, 위염 소견, 고지혈증 경계선.
예전에는 낯설던 단어들이
이젠 제법 익숙하다.
건강검진은
잔인한 유머 같기도 하다.
“큰 병은 없어요.
근데… 나이 탓인 것 같네요.”
의사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예전에는 내 몸을
고장 나지 않는 기계처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기계는 매일 아주 조금씩 닳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닳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나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것도.
결국 혼자 사는 사람에게 건강은
단순한 생존의 조건이 아니다.
삶을 지켜주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집이 아무리 편하고,
혼자가 아무리 자유롭고,
삶이 아무리 여유로워도
몸이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요즘은 체력이 확실히 줄었다.
예전엔 밤을 새우던 내가
이제는 자정만 지나도 눈꺼풀이 무겁다.
기억력은 흐려지고,
회복력은 더디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이
조금씩 나이 들었다는 걸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 앞에서
속상해하기보다
더 진지해지고,
더 다정해진다.
내 몸에게.
건강은
누군가 대신 챙겨줄 수 없다.
특히 혼자인 삶에서는 더더욱.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나는 조금 더 철저해지기로 했다.
진료 예약 알림을 확인하고,
검진일을 달력에 표시하고,
과음을 줄이고,
하루 30분은 걸으려 한다.
이 모든 사소한 노력들이
내 삶을
조금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가끔 건강검진을 마치고
카페에 들른다.
결과지를 펼쳐
한 장씩 넘겨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커피 향에 집중하는 척.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약간의 긴장과
작은 겸손으로 가득 차 있다.
“아프지 말자.
다치지 말자.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아껴주자.”
그 말들을
속으로 중얼이며
나는 조용히
혼자 살아가는 기술을 하나 더 익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