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댈루행성의 밍맹몽 #13
유일한 마을 사람, 음보그 할아버지
은디요와 하파나, 그리고 밍맹몽이 함께 찾아간 곳은 중앙통제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미끄러이키지지라는 마을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고 해도 100km가 조금 넘었다. 언제부터인지 점점 미끄러워져서 마을 이름을 미끄러이키지지라고 붙였다고 한다. 우주선 창으로 밖을 쳐다보니 안개가 희뿌옇게 끼어있었다. 분명 날씨도 꽤 쌀쌀해 보였다.
“여기가 뭔데? 뭔가 좀 음산한데?”
밍이가 우주선에서 폴짝하고 뛰어내렸다. 그러자 바나나껍질이라도 밟은 것처럼 꽈당하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바나나껍질을 밟아 본 적은 없지만.
“아이쿠, 이게 뭐지? 바닥에 뭘 칠해 놓은 것 같아!”
밍이는 넘어지고도 한참을 미끄러져 갔다.
“여기는 마찰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그래서 걸을 때도 특수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옛날보다 더 심각해진 것 같은데….”
은디요가 조심스럽게 우주선에서 내려 발을 내딛는 순간, 마을 뒷산으로 보이는 작은 봉우리에서 노란빛이 한줄기 솟아올랐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밍맹몽은 일단 마을 사람을 만나 보기로 했다.
“어서들 오너라.”
인자한 산타클로스 같은 모습을 한 마을 대표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 온 음보그 할아버지였다. 대표이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 전부이기도 했다. 마을에는 할아버지 혼자뿐이었다. 반대루 행성 인구는 도대체 몇 명인 거지? 지난번에 찾아갔던 안들리오키지지에서도 꼬마 외계인 한 명뿐이었는데.
“마을은 점점 미끄러워지기 시작했단다. 이제는 특수 신발이 없으면 다니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졌지.”
음보그 할아버지는 따뜻한 물을 잔에 부었다. 아마 일행에게 차를 자 주시려는 것 같았다.
“마을 뒷산에서 나오는 빛은 뭔가요?”
하파나가 물었다.
“노란빛 말이지….”
또다시 마을 뒷산에서 노란빛이 한줄기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뭐지? 이거 지진인가?”
밍맹몽과 다른 외계인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 뭐라도 잡았다. 진동이 작진 않았지만 그래도 물건이 막 떨어져 깨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얼마나 됐을까. 진동이 멈췄다.
“다시 작동하는 건가….”
음보그 할아버지는 노란빛이 나는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저 빛의 정체에 대해 알고 계세요? 집에서 반댈루 행성 설계도가 나왔어요. 설계도에 NS-en이라는 글씨가 이곳 마을에 표시되어 있어서 저희가 찾아온 거예요.”
은디요가 설명서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음보그 할아버지도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그 설계도를 발견했구나. 사실 나는 그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이란다….”
할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할아버지지만 반댈루 행성 우주선을 만들 정도라면 엄청나게 오래된 이야기 아닌가? 어쩌면 수백 년 전에 만들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할아버지는 도대체 몇 살이라는 거지? 그러고 보니 밍맹몽은 은디요에게도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외계인일 뿐 나이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
“NS-en이란 뉴트론 스타 에너지라는 뜻이다. 거대한 반댈루 행성을 우주선처럼 움직이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했단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에너지원을 연구했지. 난 그 당시에 연구원 막내로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심부름도 하고 그랬단다.”
“그래서 연구는 성공했나요?”
은디요가 물었다.
“그게….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단다.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문제가 생겼어….”
할아버지는 차를 한 모금 들이마시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먼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저절로 나오는 음보그 할아버지의 한숨 속에서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찰력이 사라지기 시작한 거군요….”
하파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에너지가 내뿜는 이상한 기운 때문인지 점점 마찰력이 사라져 버렸단다. 그래서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는 계속 지진까지 일어났지. 이건 마치 반댈루 행성을 지키는 수호신이 연구를 더 이상 못하게, 그리고 반댈루 행성이 떠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 같아.”
밍맹몽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마찰력이 사라지만 큰일이 나나요? 그냥 미끄러지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맹이의 질문에 할아버지가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마찰력이 사라지면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진단다. 미끄러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물체가 제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벽에 뭐를 걸어둘 수도 없고 못 하나 벽에 박을 수 없지.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고 타이어를 굴릴 수도 없으니까 자동차는 꿈도 꾸지 못한단다. 건물들도 제대로 세울 수가 없어. 그리고 씻을 수가 없어서 세균과 질병으로 결국은 모두 죽는 거지.”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붙어있었다. 이건 이미 마찰력이 사라지기 전에 사실을 알고 모두 붙여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지진이 났어도 물건이 떨어져 깨지지 않았던 것이다.
<Part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