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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26. 2024

궁지에 몰린 브랜드

지독한 일관성이 만드는 강력한 브랜드의 힘

흔히들 인간의 바닥을 본다고 합니다. 인간의 훌륭하고 귀감이 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아요. 이 표현은 보통 평소와 달리 실망스러운, 궁지에 몰린 인간의 모습을 볼 때 사용됩니다.


궁지에 몰린 인간은 생존 본능이 발동합니다. 평소 잘 포장되어 있던 대외적인 모습과 달리,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 얼마나 평소와 결을 같이 하며 일관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순간적으로 무너지더라도 얼마나 신속하게 잘 수습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이때를 위해 평소에 인성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지요.


많은 오해와 함께 누명을 써서 HR에 소환된 적이 있었는데, 제 편이어야 할 상사가 상황적 판단으로 저를 신고한 사람 편을 격하게 들더군요.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본인이 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결과적으로는 살려주셨으니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 분 행동이 저를 더 커다란 문제들로부터 보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후, 일은 계속 열심히 했지만 쓸데없는 충성심은 거두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번에는 적당히 넘어가더라도 언젠가 또 비슷한 일을 할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제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요.



평소 인성에 흠이 많은 사람이라도, 최악의 상황에서도 일관성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엔 그걸 돌아가신 아버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멋진 장점도 많았지만, 그때 그 시절 가부장적인 분으로서, 꽤나 치명적인 단점을 몇 가지 가지고 계셨습니다. 언제나 강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걸까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하셨고 말을 필요 이상 심하게 하는 편이셨습니다. 약해 보이고 없어 보이는 걸 정말 싫어하셨어요.


자존심이 워낙 강하시고 나이가 꽤 드신 후에도 전혀 꺾이지 않아서,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만 했습니다. 만나면 싸움뿐이었고요. 저도 괜한 정의감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꺾이지를 않거든요.


그러던 분이 췌장암 말기로 여명이 3개월~6개월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전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 아프실 텐데도 언제나 꼿꼿이 앉아서 방문객을 맞으셨고, 약 때문에 횡설수설해도 두목의 포스로 하셨지요. 간호사분들은 여전히 난폭하게 대하셨고, 저랑도 계속 싸웠습니다. 그것도, 어느 순간 말을 못하시게 되기 전까지였지만요.


말을 잃으신 후에는 죽음과 싸우셨습니다. 밤에 주무시지 않고 눈을 또렷이 뜬 채 악으로 앉아 계셨어요. 너무 졸려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침대 난간을 붙들거나 저나 동생 팔을 붙들고 버티셨죠. 잠과 싸우면 죽음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입원 후 의사 선생님이 여명 1주로 확신하신 후에도 한 달 정도는 더 사셨던 것 같습니다.


끝까지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으셨어요. 죽음을 두려워하신 건 분명하지만, 잘 봐달라고 사정하지 않고 맞서 싸우셨죠. 평생을 무교로 사셨는데, 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등 돌려 벽 보고 누운 채로 병실에서 세례만 간신히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그 지독한 성정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더군요. 만약에 죽음 앞에서 갑자기 무너지며 도움을 구하거나,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살가운 말을 하셨다면 캐릭터가 와장창 깨졌겠지 싶습니다. “결국 이럴 거면서…” 싶었겠죠.


끝까지 같았기에,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멋있습니다. 가족에게, 주변에게 심하게 한 것이 본인의 힘을 믿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요. 통증에 시달리며 온몸으로 검은 물을 뱉어내는, 죽음을 대면한 상태에서도 똑같았습니다. 강약약강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인 걸 보고 나니 그 일관성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지까지 따라오신 아버지 친구 분(짝사랑이셨던 것 같지만…) 말씀처럼, “ㅇㅇ이가 진짜 남자거든.”이라는 표현이 어울렸습니다. 차은우 아니고 전두환 느낌으로요.


저도 그렇게 일관적으로 살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물론 아버지보다는 많이 순하게.



어떤 브랜드라도 지독하게 일관적이라면 멋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브랜드라도 일관성을 깨뜨리고 소비자를 배신한다면, 그 순간 마음을 잃게 됩니다.


아, 일관성을 깨는 것과 각별한 “예외”는 다릅니다.


암 진단 소식을 듣고 서둘러 뉴욕에서 서울 본가로 가 아버지 방문을 열었을 때, 한없이 작아진 몸으로 일어나지도 못하시면서 그게 분하다는 듯이 펑펑 우시던 아버지가 종종 생각납니다. 그런 모습은 가족 중에 저밖에 본 적이 없어요. 전해도 아무도 차마 믿지 못하던 이야기네요.



할 수 있죠? 일관적인 브랜드가 되는 거.


-- 아버지 생신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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