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곧잘 믿는 나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사주를 보러 가신다고 했다. 꽤 유명한 곳인지 몇 주를 기다리셨다. 가는 김에 나의 사주도 봐주셨는데, 종이 한 장에 과거와 미래가 가득 적혀 있었다. 찬찬히 읽어 보며 지난날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것을 한참 읽다 보니 어쩐지 그렇게 살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아, 의심을 많은 줄 알았는데 이걸 그대로 믿네’하며 다시 종이를 접었다.
종이를 접어도 그 속에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춤춘다. ‘그때쯤 무얼 하고 있겠구나’ 종이를 펼치기 전에 몰랐던 미래를 떠올리던 순간,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었나’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전해온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낯선 모습이다.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불현듯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러니 철학관이나 점집이 없어지지 않는 거겠지. 내 사주는 성격만큼이나 둥글둥글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사이좋게 펼쳐져 있어, 불안과 안심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굳이 사주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어쩐지 점집의 후기처럼 ‘정말 용하다’까지는 아니었기에 참고만 하기로 했다.
참고만 하기로 했다지만, 종이를 받아 들었을 때 어떤 이야기가 쓰여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마치 여기에 인생의 답이라도 적힌 것처럼. 다행히도 받아 든 종이에는 엄청난 비밀이나 해결책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전처럼 살아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