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은 슬픔
요 며칠 알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슬픔을 헤집고 헤집어서 어렴풋이 이유를 찾았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 이유지만 그것마저도 모호했다. 그런데 M과 대화하면서 나는 그 이유를 더욱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한참이나 이어지던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녀는 어깨를 도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네. 그럴 땐 다 그래.”
그랬다. 이유는 밖에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건 ‘내 마음의 문제’였다.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리 없고, 그런 적도 없었는데 그 사실이 새삼 힘든 건 다름 아닌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다.
그럼 내 마음의 여유는 어디로 사라졌나.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몰려와 얼마 남지 않은 여유마저 죄다 삼켜버렸다. 1년 후, 3년 후 내가 바라는 모습을 나는 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애쓴 지 수개월째다. 되지 못하다고 생각한 적 없고,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한 친구와의 대화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나의 불안을 깨웠다. 여름을 맞아 친구들은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 시간이 되는지 함께 시간을 맞춰봤다. 그러다 한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네가 하는 게 언제 끝난다고?”
“응? 끝이 어딨어. 목표를 이뤄야 끝나는 거지”
“그때 언제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다른 거야.”
그 뒤로 친구는 다른 말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내 목표를 딱 한 번 자세히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친구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관심 없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난 친구들에게 나의 목표나 꿈에 대해서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물어오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속에서는 “관심 없으면서 왜 자꾸 물어봐?”라고 되묻고 싶지만, 날 선 대화는 그는 물론 나도 상처 입으니깐 그저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만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친구들과는 거리를 둔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거리를 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예전처럼 친구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하루를 나누었다. 메시지를 읽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라 여겼으므로. 친구들은 “요즘 왜 연락이 없느냐”며 물었다. 그 물음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또다시 두루뭉술하게 답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언제 만나서 놀러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단체 대화방이 좋은 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흘러간다는 거다. 친구들이 주고받은 말을 보면서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하고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의 하루를 보듯이 읽어 넘겼다. 그러면서 문득 우리들의 거리를 실감했다. 우리를 이어주던 끈이 낡아버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를 다독여주던 M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아주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가 있는데, 이제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됐어. 아쉽지만 지금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M의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M 그녀의 말처럼 언젠가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소원해진 친구와도 가까워질 수 있겠지. 당장은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