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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20. 2022

모든 처음에 경의

어쩌면 보통날 8


올해는 꼭 암막 커튼으로 바꿔야지. 라고 몇 해를 다짐했던가. 창문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침대 위로 커튼을 투영한 빛이 이불처럼 누웠다. 몇 시지. 눈썹 사이에 주름이 패이는 힘이 느껴졌고, 최근 들어 이 두 개의 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미간을 비비며 일어났다. 휴대폰 액정에 뜬 시간은 오전 8시. 토요일이다. 숙취엔 오랜 잠이 최곤데. 어젯밤 잠들며 치우지 않은 와인잔과 앞접시를 싱크대로 옮겨놓고 커튼을 젖혔다.


설맹이라 했다. 눈(雪)에서 반사되는 빛에 오래 노출되면 실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설산을 갈 때 꼭 챙겨야 하는 것 중 하나가 그래서 선글라스라 했다. 창 밖이 온통 하얗다. 아치형 돔 모양의 마트도, 암스테르담 건물 모양을 본뜬 원룸 건물들도, 차도, 거리도, 도로도 두툼한 눈더미 아래 고요히 묻혀 있다. 아치형 돔 모양의 마트와 암스테르담 건물 모양을 본뜬 원룸 건물들과 차와 거리와 도로의 풍경이 익숙한 사람만이 그려볼 수 있을 눈더미 아래의 형태.


눈(雪)의 시간이 있다.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 동안 부지런히 내리는 눈의 시간, 밤사이. 춥고, 어둡고, 고요하고, 무엇보다도 남몰래 내리기에 밤사이만큼 좋은 때가 없다. 그래 놓고 혹여 지나쳐버릴까 커튼을 뚫은 빛으로 표현하는 존재감. 이게 눈일까? 아님 양감을 지닌 비일까? 알쏭달쏭했던 지난주의 무엇은 비였던 거다. 올해 첫눈은 이렇게 제대로 내렸다.


신기하지. 겨울의 끝자락, 내년 계획이 슬그머니 고민되는 연말에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하다니. 올 초에 내린 눈은 눈이지 첫눈이 아니다. 다음 해로 넘어가는 겨울은 올해의 연장이니 처음에서 배제하는 것. 그렇담 겨울이 끝나는 시점까지 한 해를 연장하면 안 되나. 한 해가 봄으로 시작될 때 뭔가 더 잘 살아보고 싶을 것 같은데.


유일하게 창이 창으로서 역할을 하는 계절. 커튼을 반쯤 열어두었다. 아치형 돔 모양의 마트 앞은 빠른 비질로 어느새 길이 나 있다.


주말 내내 눈이 내릴 거란 예보가 있었다. 나는 어제 퇴근길에 대형 마트에 들러 이틀 치의 장을 봐 왔고 차는 지하주차장 구석진 곳에 주차해놓았다. 월요일 빙판길에 운전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평소 기상 알람보다 1시간 빠른 알람도 추가 설정했다. 하얗게 흐린 하늘과 하얌이 덮인 바닥의 경계가 모호한 이런 풍경을 고대하는 대신 출근부터 걱정하는 재미없는 어른. 창가에 서 있으니 발이 시리다. 아침을 챙겨 먹어야겠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누구는 첫눈이 지난달 말이었다고 하고 누구는 지난 주말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말은 기상 관측이라는 세밀한 이유로 기록된 첫눈인 듯하고 지난주는 내가 서울에 있어 직접 보질 못했다. 어쨌든 내겐 오늘이 첫눈이다. 직접 보고 느낄 때 쓸 수 있는 관형사, 첫.


지난 주말에 서울에 있었던 건 19년도 이후 4년 만에 개최된 지오디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이란 단어가 눈처럼 잘 어울리는 단어인 사랑. 내 첫사랑은 호영오빠였다.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 돌아온 땀내 나는 또래들보다 긴 머리를 살랑거리며 조그만 아이를 능숙하게 보살피는 따뜻함에 떨렸다. 인중에 거뭇하게 콧수염이 난 변성기의 반 아이들보다 무대를 누비며 환하게 웃는 몸짓에 설렜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막연한 꿈을 꾸게 한 대상으로 흠모했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성숙했다. 


미리 배송받은 티켓을 잘 챙겨 도착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티켓이나 응원봉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는 사람들. 마스크를 써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얼굴엔 교복에 하늘색 우비를 걸쳐 입었던 소녀들이 담겨 있다. <촛불 하나>에 맞춰 시작된 공연. 주술이라도 걸린 듯, 오래 듣지 않았던 노래들인데 가사가 무의식적으로 따라나온다. 목청껏 불렀다. 두 시간여의 본 공연이 끝나고 <하늘색 풍선>으로 앙코르 공연이 시작됐다.


전주는 흐르는데 무대가 비어있어 두리번거리는데 앉아있는 좌석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출입구에 조명이 비쳤다. 조명을 받은 호영오빠가 보였고, 나는 1층 제일 끝열에 앉아 있었고, 오빠가 이쪽으로 걸어왔고, 손을 잔뜩 뻗었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던 오빠가 내 손을 놓치지 않았고, 꼭 잡았고, 따뜻했고, 찰나였고, 오빠는 다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멀어져 갔고, 그제야 내 손이 차갑진 않았을까 걱정이 됐고, 내내 얼떨떨했고, 잠깐 시간이 멈췄다. 세 시간에 가까운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며 깨달았다. 나는 열여섯의 나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도 진전하지도 않았다.


정용준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 만세>를 주말 내내 붙들고 있었다. 집중하면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는데. 책을 읽다 말고 창밖을 봤고, 창밖을 보다 말고 책을 읽었고, 책도 창밖도 아닌 휴대폰만 봐서 였다. 눈은 오다 말다를 반복하며 일요일까지 내렸다. 쌓인 눈의 두께는 그대로인데 색이 변했다.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것 같은 새 하얀색에서 하얀색으로, 푸른색으로, 회색으로, 약간 짙은 회색으로, 아주 짙은 회색으로.  


후배가 며칠 전 퇴사를 했다. 어떻게 하면 선배처럼 회사를 다닐 수 있냐 물었던 후배였다. 어떤 충고보다 다만 나는 너무 뿌리내리지 말고 물결에 휩쓸리듯, 이리로 가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면 저리로 가는 부레옥잠처럼 다닌다 했었다. 그 말에 후배는 퇴사란 결론을 내렸을까. 회사의 위치나 규모 면으로 훨씬 나은 동종업계로 이직을 한 후배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후배는 훌쩍 가버려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주에는 신입사원 채용 절차가 진행된다. 실기 시험 후 3차례의 면접이 마무리되는 이번달 말 최종 결과가 나온다. 어떤 이의 처음과 어떤 이의 끝. 이 연결. 무한 반복의 고리.


올해 유독 비가 내리지 않아 하루가 멀다 하고 물 절약 재난 문자가 온다. 이 정도 적설량이면 좀 해갈이 되려나 했는데 저수율은 요지부동이란다. 눈은 물기를 머금은 습식 눈과 물기가 적은 건식 눈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내린 눈은 건식 눈이라 강수량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첫 비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는데 첫눈에 대한 기록만 가득해서일까, 첫눈처럼 첫 비를 바라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내년 첫 비를 나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처음을 이름 붙이고 싶을 때 비로소 처음이 된다. 처음은 만들어진다. 누군가로 인해. 누군가에 의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듯. 이름을 불러주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듯. 혹은 눈(雪) 짓이 될 수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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