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북유럽 10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의 일정을 확인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열심히 준비한 일정이다. 예약을 미리 해놓은 식당 방문 일정을 제외하고 다른 내용을 전부 삭제한다. 그리고 다시 정리한다. 크리스티안보르 궁전과 왕립도서관 정원 방문을 이틀로 나누어 놨는데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곳이니 오늘 오후에 한 번에 가고, 그럼 여유가 생긴 시간에 아르켄 미술관을 가면 되겠다. 어제 간 루프탑 카페를 또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일단 옵션으로 놔두고. 이걸 추가하고 저걸 생략하고. 평면의 구글 지도엔 없던 정보들을 획득한 탓에 매 아침 하루 일정을 부수고 재구성하느라 바쁘다. 최종 수정 완료. 이젠 프로듀서가 아닌 출연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다. “최종 큐시트, 원고 정리 됐습니다. 이대로 갈게요!”
이틀간 비가 오락가락했던 것이 무색하게 오늘은 아침부터 아주 화창하다. 좋아하는 레더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었다. 코펜하겐의 건물은 저 탁한 하늘색이 포인트라고, 탁한 하늘색 건물과 옅은 노란색 건물이 나란히 있을 때 비로소 코펜하겐 느낌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여행 10일째 아침이다.
코펜하겐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Jægersborggade 거리는 카페, 베이커리, 브런치 가게 등이 모여 있어 코펜하겐의 핫한 공간을 다루는 SNS에서 자주 본 곳이었다. 이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카페인 커피 콜렉티브Coffee Collective도 이 거리에 있다는 걸 알아 일찌감치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이 거리를 향해 걸어오는데 이 부근 전체가 젊은 감각이 넘치는 동네였다. 보이는 빵집이나 카페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엔 맛있는 빵과 맛있는 커피를 위해 괜찮은 곳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건물의 끝자락 1층에 있는 커피 콜렉티브에 도착했다. 살짝 서늘한 아침이지만 아이스 라테를 주문해 모든 의자가 한 방향을 향해 놓여 있는 야외 좌석에 앉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빈 커피잔들이 많이 보인다. 책을 읽는 사람과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 선글라스를 낀 채 미동 없이 햇빛을 향해 앉은 사람 등. 역시 사람 구경이 제일이라 야외 좌석에 앉게 된다. 유독 같은 빵 봉지를 든 사람들이 커피를 주문하러 들어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찾아보니 이 거리에 있는 Meyers 베이커리다. 내가 확인한 구글 지도엔 없던 생생한 정보. 바로 체크했다.
브런치를 예약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했는데 예약한 11시에 도착한 The sixteen twelve의 내부는 이미 만석이었다. SNS에서 보고 상상한 것과 달리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아주 작은 가게였다. 예약자 이름을 확인한 뒤 안내받은 창가 자리는 그 Meyers 베이커리가 정면으로 보이는 좌석이었다. 사람 구경하기 역시 이만한 자리가 없다. 버섯 토스트와 시금치가 들어간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반 층 지하로 내려온 이 위치와 분위기, 이미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얼굴 등을 보니 아직 메뉴를 받아보진 않았지만 예약하고 오길 잘했다 싶다. 홈페이지나 SNS에 예약 버튼이 활성화되어 있다면 예약을 하는 편이 옳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한다. 볶은 버섯이 듬뿍 올라간 토스트는 건강하게 맛있는 맛이었다. 빵이 좀 큰가 싶었는데 어느새 접시를 텅 비웠다. 어느덧 버섯의 진가를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북유럽 미술관 여행> 책의 소개글을 읽고 단박에 반한 곳인데 위치가 애매해 후순위로 미뤄 둔 아르켄 미술관Arken Museum of contemporary art을 목적지로 찍고 길을 나섰다. 크리스티안보르 궁전과 왕립도서관 정원 방문을 하나로 묶은 덕분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기차 그리고 다시 버스. 그렇게 1시간이 훌쩍 넘는 환승 끝에 다음 정류장이 아르켄 미술관이라는 안내가 나와 하차벨을 눌렀다. 보이는 것이라곤 무성한 풀숲과 하얀 미술관의 먼 외관뿐인 외딴 마을의 정류장에 내렸다. 인적 드문 길을 조금 걷고 나니 마치 노아의 방주 같은 모습의 아르켄 미술관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서 아르켄 미술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88년, 겨우 25세의 건축학도 소렌 로버트 룬드는 코펜하겐 남쪽으로 19킬로미터 떨어진 쾨게만(灣)에 세워질 새로운 근대미술관 설계 공모전에서 우승을 했다. 주변을 둘러싼 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며, 자연의 모습이 건축과 함께 융합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대로 해안가를 따라 견고하게 정착해 있는 배의 모습과 같은 상상력이 풍부한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오늘날, 이 미술관은 바다 위의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해양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건축물로 우뚝 서 있다.
건축적인 가치가 있는 만큼 이 노아의 방주 아르켄 미술관 자체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라 생각했는데. 도착하니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익숙한 이름의 작가는 아니었지만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를 만든 작가란 설명을 듣고 “우와”했다. 콩 모양을 닮아 시카고 빈Bean으로도 불리는 클라우드 게이트를 직접 보곤, 사물을 뒤집어 반사하는 이 커다란 조형물 하나로 사람들을 시카고로 모이게 하는 데에 감탄을 터트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아무런 제지 선을 놓아두지 않았다. “이거 작품 맞나?” 싶게 전시실과 복도의 구분 없이 툭, 놓여있기도 했다.
생각할 거리를 담은 설치 미술이란 게 이런 걸까. 까만 회화 작품이 걸려 있어 가까이 갔더니 단지 뻥 뚫린 내부 공간의 표면이었고 반대로 포트홀처럼 바닥이 파인 줄 알았더니 단순히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평면의 검은색이었다. 오목 렌즈처럼 안으로 동그랗게 말린 작품은 깨진 유리를 모아 놓은 것처럼 관람객이 움직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을 수 십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왜곡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정색의 흡수력에 대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에 대해,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끝없이 바뀌는 형체에 대해, 인간의 쉬운 착시에 대해 생각했다.
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더니 미술관 복도 손잡이나 조명, 화장실 문 등이 꼭 배의 내부인 것처럼 디자인되어 있었다. 볼트를 잠가놓은 듯한 형태를 보며 미술로의 첫 발, 이 세계로의 항해 같은 제목들이 떠올랐다. 어제 갔던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아주 북적북적했던 것에 비해 토요일에도 아르켄 미술관은 아주 한적했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미술관이 공존한다. 심지어 각각의 훌륭한 전시가 있는.
미술관을 나와 실개천이 흐르는 미술관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바람 덕에 이리저리 반짝이며 흔들리는 설치 작품이 보였다. 가까이 가니 큰 새장 같은 골조물 안에 달린 커다란 거울이었다. 그 앞에 섰더니 거울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나를 비추었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반만 비추었다가, 한참을 흔들리거나 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나를 보는 시선이 멋대로 달라진다. 단편의 포착으론 온전한 나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비추어지는 내가 아닌 비추어지지 않더라도 항상 서 있는 나를 반드시 내가 인지해야 한다. Love myself. 그 쉽고 어려운 진리의 명제가 생각나던 순간이었다.
저 멀리 하강하는 패러 글라이딩의 알록달록한 날개가 보였다. 수년 전,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적이 있다. 다른 도시보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도전했던 것이었다. 스카이 다이빙을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 차를 나눠 타고 이동한 곳에서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노을 지던 프라하 근교 하늘을 보며 급강하하던 그 매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난다. 기억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내가 그랬었나?” 반문하던 내게 이렇게 과정 하나하나가 온전하게 기억나는 건 스카이 다이빙이 거의 유일하다. 언젠가 저 패러 글라이딩도 도전해야지. 과정의 온전한 기억을 다시 한번 남길 수 있게.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코펜하겐 도심으로 넘어왔다. 돌아오는 기차에선 깜짝 졸았다. 바깥 풍경을 더 보지 못해 안달 나는 마음으로 잠을 쫓던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의 지도는 얼핏 보면 서울과 비슷하다. 가로로 흐르는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나뉘듯 코펜하겐 역시 사선으로 흐르는 바닷길을 중심으로 위아래가 나뉘어있다. 서울과 비교하자면 꼭 중앙박물관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에 왔다. 궁 입구가 어디인가 찾는데 한쪽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천장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view라는 단어가 있다. 전망대인가 싶어 일단 줄부터 선 후 찾아봤다. 성 내부 관람은 유료지만 -물론 코펜하겐 카드로 입장이 가능하다- 전망대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단다. 무료이기도 하고 짐 검사를 마친 뒤 좁은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타야 해 입구부터 철저한 통제를 하고 있었다. 이 위치에서 코펜하겐을 감상하는 전망대라니. 운이 좋았다.
내 앞에 선 여행객이 열심히 가이드 북을 읽고 있었다. 우연으로 이렇게 몰랐던 전망대를 만날 수 있지만, 가이드 북을 통해 이 전망대의 유무를 확인하고 찾아오는 건 다른 일이다. 여행지를 결정한 후 제일 먼저 가이드 북부터 사던 때가 있었다. 나라의 주요 정보와 도시의 특징 등을 활자로 익히며 여행을 준비하고, 가이드 북에 달린 지도를 잘라 펜으로 표시해 가며 걸은 골목을 확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앞에 선 여행객이 가이드 북을 또 한 장 넘겼다. 다음 여행은 SNS나 유튜브, 여행 에세이 말고 가이드 북을 사서 볼 것. 그 가이드 북을 가지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이드 북을 들고 여행해 볼 것. 그때의 아날로그와 지금의 디지털을 합쳐 무적의 여행자가 되어 볼 것.
전망대에 오르니 높지 않은 코펜하겐의 붉은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코펜하겐 시청과 프레데릭 교회, 스트뢰에 중심의 갤러리 첨탑 등의 눈에 띄는 건축물을 기준하니 코펜하겐의 지도가 대략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저 멀리 흰 연기를 뿜는 공장과 다리의 형태가 보였다. 나는 코펜하겐 시청과 프레데릭 교회, 스트뢰에 중심의 갤러리 첨탑 등의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한 딱 이만큼의 코펜하겐을 보고 갈 것이다. 저 멀리 다리를 건너 나타날 풍경과 흰 연기를 뿜는 공장 주변의 삶은 모른 채. 하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집, 회사 반경만큼의 반경만 겨우 알고 있는 걸. 원래 인생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전부 알지 않아 살아갈 수 있는 것.
전망대를 내려와 성 내부로 들어왔다. 역사를 담은 테피스트리로 화려하게 장식한 응접실, 넓은 식탁, 화려한 샹들리에, 도서실, 붉은 카펫과 붉은 벽지를 지나니 크리스티안보르 성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창을 가진 곳에 도착했다. 그 옆엔 큰 TV 모니터를 통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2024년 1월, 총리에 의해 현 프레데릭 10세 국왕이 국왕으로서 선포되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국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저 창 앞의 발코니였다. 그러니까 저곳에서 내가 새 국왕이다 하고 인사했구나. 그날 이 앞 광장에 모인 인파가 1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북유럽의 선진국이 왕실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음을 담아 지지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보트 투어를 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왕립 도서관 앞 장미 정원의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자리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듣고 메모장에 문장을 몇 적고 나니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버스를 타러 다시 크리스티안 보르 성 앞으로 돌아왔다. 타야 할 버스가 곧 도착해 버스를 타러 앞을 향해 걷는데 자전거 한 대가 나를 아주 가까스로 비켜갔다. 들고 있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고, 자전거 운전자는 그 자리에 멈춰 내게 불같이 화를 냈다. 주변 사람들로 놀라서 나를 쳐다봤고 나는 다행히 깨지지 않은 핸드폰을 주워 막 도착한 버스에 탑승했다.
자전거 도로가 활성화되어 있는 코펜하겐은 우리와 다른 도로 체계를 가지고 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인도 앞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지나서 버스를 탑승한다. 인도와 도로 사이에 자전거 도로가 있고, 그 탓에 버스를 탑승하는 별도의 짧은 인도가 있는 것이다. 버스가 온 것을 확인하고 별생각 없이 이동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자전거 운전자가 덴마크어로 화를 내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해석 가능한 말로 혼이 났다면 나는 내 실수를 무척이나 오래 곱씹었을 것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법. 발을 내딛기 전 반드시 자전거를 확인하자. 새길 문장이 생겼다.
맛과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노르딕 퀴진. 북유럽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덴마크인 만큼 미슐랭에 이름 올린 레스토랑을 방문하고 싶었다. 미슐랭 사이트에서 북유럽 요리를 선보이며, 가격대와 위치가 적당한 레스토랑을 골라 추렸다. 그중 내가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가능하며 1인 예약이 가능한 레스토랑 라디오Restaurant Radio을 찾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벌써 와인을 마시고 있는 손님들이 몇 테이블 있었다. 미슐랭 식당이라지만 굉장히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흰 티셔츠 위에 까만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비틀즈 음악이 흐르는 곳. 전해 준 메뉴판을 확인했다. 여행에 마성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역시 ‘이왕’. 이왕 온 거, 이왕 먹을 거, 이왕 마실 거. 그렇다면 3코스 대신 5코스, 일반 와인보단 소믈리에 추천 와인 페어링이다. 바로 주문을 마쳤다.
식전에 나온 프렌치토스트와 빵, 따뜻한 수프와 컬리플라워와 누룽지가 들어간 애피타이저, 연어와 흰 살 생선을 활용한 샐러드와 메인 메뉴, 그리고 라즈베리 쿠키와 아이스크림으로 이어지는 디저트까지. 매 메뉴에 어울리는 각각의 추천 와인들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미슐랭 식당은 완전히 색다른 재료, 색다른 메뉴가 아니라 익히 먹어 왔고 알고 있던 재료와 메뉴를 얼마나 다르고 다양한 맛을 내게 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했다. 소스를 무엇으로 하고 -그 조합의 차이- 재료를 어떻게 굽고 삶고 -그 식감의 차이- 그걸 얼마나 조화롭게 -그 시각적 차이- 보이느냐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두 시간 반 동안 정말 원 없이 먹고 마셨다. 맛있는 식사로 아주 행복했다.
내 옆자리엔 생일을 기념하여 온 가족이 있었다.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불자 내 오른편에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이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나도 취기를 빌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보고 싶었는데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이미 계산을 마쳤는지 빈 테이블만 남아 있었다. 그 인사가 뭐라고 망설였을까. 대신 아주 맛있었다는 인사를 직원에게 건네고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식당에선 이제 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결제를 마치고 나와 호텔을 향해 걷던 중 알았다. 팁 계산을 잘못해 계산해야 했던 식사비의 거의 두 배를 지불했다는 걸. 보통의 경우는 %로 적힌 팁 버튼을 누르도록 되어 있는데 이곳은 손님이 직접 팁을 계산해 결제할 전체 금액을 직접 입력하는 방식이었는데 카드만 쓰고 다니다 감각이 없어진 환율 탓에 엉뚱한 숫자를 눌러버린 것 같았다. 다섯 잔의 와인 때문이었는지, 아님 그냥 무엇에 씌었던 건지도 모른다. 큰 금액이 결제됐다며 메시지를 보내온 카드 앱 알람에 적힌 한화 금액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잘못 계산한 줄도 몰랐을 것이다.
어차피 무를 수도 없고, 서비스는 사실 이 정도 값을 지불만했다는 위안을 하며 걷는데 속으로 너무 웃음이 났다. 이 와중에 이 에피소드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슐랭 식당에 와서 밥 값만큼 팁을 결제하고 간 미스터리 한 여행자로,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 식사와 이 결제를 한 건지 직원들끼리 둘러앉아 나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한 뼘 어두워진 도시. 물을 먹은 듯 진한 파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오후 8시가 넘었는데 이제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 취기가 약간 오른 나만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다. 괜히 아쉬워 호텔 주변 한 바퀴를 돌고 들어왔다.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높은 확률로 원인 모를 향수를 느끼곤 한다. 홍콩에서도, 파리에서도, 도쿄에서도, 포르투에서도 그랬다. 굳이 고르자면 포르투갈어를 쓰는 작가들을 좋아하니까 아무래도 그쪽일 가능성이 있을까? 혹은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의 전생을 거쳐왔을지도 모른다. - <미지를 위한 루바토> 중
여행지 대부분에서 원인 모를 향수를 느낀 나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의 전생을 거쳐온 것일까. 그것만이 이 원인 모를 향수를 설명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후생의 내가 느낄 코펜하겐의 향수는 전생이 될 지금의 내가 열심히 밟아 만든 하루하루의 결과물이 되는 걸까.
그걸 생각하니 이제 아주 조금의 생을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