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하는 자의 의지

니체 읽기(8), 자기 극복에 대하여, 9월 21일 단상

by 김요섭


해체의 단면


그녀는 칼을 들었다. 다시 내려놓았다. 아니라고 사정한다. 남자는 결코 아니라고 한다. 그래, 그럼 이야기를 들어보자. 너의 거짓된 삶의 뿌리 속까지. 슬픈 피에로처럼 그의 얼굴은 변했다. 검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여자는 오히려 차분해진다. 격렬하게 요동치던 심장의 박동은 점점 느려진다. 피가 흥건한 테이블에 칼을 내려놓는다. 지연의 미덕이 언제든 가능한 것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그녀는 왕좌에 앉은 것처럼 관대해졌다.


여자는 조금 떨어진 스툴에 앉았다. 그의 숨소리와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를 관찰한다. 애매한 진실과 확실한 거짓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심판의 날, 그의 울먹임과 거짓의 심연은 모순되지 않는다. 재앙의 아름다움은 풍만한 가슴으로 두 아이 모두 젖을 물리기에.


죽음을 직면한 현전의 순간이 남자를 누구보다 진실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의 무의식은 진실이며 구체적 현실이 피 묻은 옷을 입고 나타났을지도 알 수 없다. 잠시 느긋했던 그녀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인다. 속을 알 수 없다. 감춰진 절단면으로 나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내가 그 무엇을 창조하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든 나는 곧 내가 창조한 것과 내 사랑의 적이 되어야 한다. 내 의지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니체



벨 수 없는 것


한동안 그를 지켜보던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사랑하긴 했던가. 그와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떤 추억도 그녀를 막아서지 않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다시 손에 쥔다. 그는 창백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흑백의 화면은 시대에 맞지 않다. 건성으로 지나치는 순간은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나간다.


'생명 넘치는 것으로 하여금 복종하면서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내리면서도 복종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무엇인가?' - 니체


그녀의 칼은 허공을 갈랐다. 그는 힘없이 스러진다. 그리고 여자의 칼도 함께 스러진다. 붉은 것이 분수처럼 쏟아진다. 뜨거운 진실이 방 안 가득 퍼진다. 그녀는 순간 느낀다. 쉽게 잘린 것과 결코 벨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지. 차가운 정적이 끈적한 것 위를 흐른다.


여자는 쓰러진 이젤을 다시 일으킨다.

붉은 물감이 흩뿌려진 그림을 노려본다.

찢긴 남자는 말없이,

허공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진리 앞에서 부수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은 부수어버리기로 하자! 아직도 세워야 할 집이 많지 않은가!'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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