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 의도치 않게 N잡러가 된 대학원생, 남, 30세
정형외과 X-ray+도수치료
아이폰16 128GB
수입 1,781,560원
지출 3,199,812원
이번 달부터는 단기적으로 돈 버는 일의 비중은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더 들이기로 했다. 그러려면 아껴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 9월의 지출을 숫자로 확인했으니, 남은 4분기는 차분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창업지원사업을 9월로 마무리했고, 최종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건축사 시험, 대학원 개강, 창업지원사업의 마무리와 작은 디자인 일을 마치느라 8–9월 동안은 쉰 날이 하루도 없었다. 추석 연휴에도 2건의 점심 약속은 있었지만 곧장 집에 돌아와서 작업을 해야 했다. 이제부터는 소비를 줄이고 차분히 사는 방식과 여행도 좀 다니고 조금 더 무리하는 방식 중에 선택해야 할 텐데, 어떤 하반기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누워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거대해 보였던 일들이 끝나니 여행도 다니고 싶고 또 다른 일을 만들고 싶다. 내년 연초에 생길 수도 있는 작은 공간의 기획을 제안했고, 출판 계획을 더욱 단단히 했고, 또 다른 학기가 시작했고, 식물 가구를 완성하고 전시에 참여하기로 했다.
식비 622,800원
퇴사한 이래로도 꾸준히 요리를 하고 있지만 최근에 돈을 잘 벌고 있어서인지 식비가 평균치를 훨씬 상회했다. 첫 번째 원인은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는 첫 주 동안은 무조건 밖에서 사 먹었다. 두 번째로는 4분기에 고민해 볼 문제인데, 내가 아무런 성과를 못 내던 시기에 흔쾌히 밥을 사줬던 사람들이나 시간을 내서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려고 한다. 이것도 내가 어느 정도 벌고 있는 시기에나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이런 습관을 아빠한테 배운 것 같다. 그리고 박솔뫼 작가가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기만 하면 그들이 미래에 언젠가 내가 쩔쩔매는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했으므로. 이번 달에는 총 9회 밥을 샀고, 그렇게 하는데
308,900원을 썼다.
6일 | 정형외과 지출 45,900원 +택시 13,300원+공짜 커피
토요일 건축사 시험을 앞두고 화요일에 간단히 복싱을 하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시험 준비에 스퍼트를 올리려 했다. 시험을 앞둔 3일간은 운동을 쉴 거니까 조금 의욕이 있었는데, 코치님이 스파링을 하고 가라고 하셨다. 스파링은 언제나 조금 무섭긴 하지만 나는 2살 터울의 형제와 같이 자란 사람(형은 어린 시절 수영 선수였다.)이고, ‘그래 시험 전에 몇 대 맞고 정신 차리자!’의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주먹을 딱 한 번 섞었을 때, 어 이거 조심해야겠다고 느꼈고, 나는 원래 얌전한 편인데 열심히 도망다녔음에도! 끝나고 보니 입술에서 피도 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날 일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 건축사 시험에서 1과목만 합격하면 되는 상태기에,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하며 열심히 도면을 그렸다.
지난 시험 때는 대중교통으로 갔지만, 갈비뼈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기에 이번엔 택시를 탔다. A2 사이즈의 몸통보다 큰 제도판과 제도 용품을 메고 겨우 5층 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긴장이 쫙 풀려 아무 생각도 없고 몸을 획 돌려 자리에 앉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뒷사람의 제도 용품 세트를 시원하게 엎어버렸고, ‘이렇게 중요한
시험에서 이런 민폐를… 와 이건 무릎 꿇어야겠다’하고 뒤돌아보는데 아는 얼굴이었다. 90도 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14학번 우준희라고 하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라 말했다.
선배는 괜찮다고 시험 끝나고 얘기하자 정말 괜찮다고 같이 시험 잘 보자며 초콜릿을 주셨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재차 사과를 드렸는데, 준희 네가 그걸 떨어뜨려 줬기 때문에 내가 시험에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고.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해주시고, 커피도 사주셨다. 일시적이겠지만 나도 당분간은 대인배의 마음가짐으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7일 | 조의금 50,000원 → 오아시스(비타500)
건축사 시험 2일 전에 직전 회사 동료(정확히는 1년 후배님)에게 부친상 부고를 받았다. 나는 결혼식은 몰라도 장례는 가능한 한 참석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산다. 이번엔 시험을 앞두고 몸도 성치 않아 서울 외곽까지 다녀오기가 부담되었고, 그렇다고 돈만 보내자니 그것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돈만 보내는 건 의미가 없기에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을지, 아니면 이렇게 멀어지게 되나 싶었다. 그러나 부고를 지나치기에는 회사에서 봤던 그분의 장점과 밝음이 생각나서, 장문의 메시지와 조의금 5만 원을 보냈다. 방문 없이 조의를 표하는 건 이번만이라고 다짐했다.
건축사 시험장에서 뒷사람(선배)의 제도 용품을 엎은 뒤 정신이 없고 목은 타는데, 물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밖에 정수기가 없나 돌아다녀 보는데 정수기는 없고 밖에서 사올 시간은 안될 거 같고, 선배한테 물 한 모금 달라고 하면 그건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시험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옆 교실에서 동료의 남편분께서 나를 알아보시고 비타 500을 가져다주셨다. 만약에 내가 이번 회차에 건축사 시험을 마친다면, 작은 친절과 대인배들의 도움을 받은 합격이다.
18일 | 아이폰 16 128gb 1,250,000원
직전에 아이폰 12 미니를 사용했었고, 케이스를 사용하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이제는 케이스가 없어도 휴대폰을 떨어뜨리지 않을 만큼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3년 반을 넘긴 아이폰 12 미니의 배터리 수명은 참을만했으나, 4월 10km 러닝을 하던 날 박살 난 뒷면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돈이 있을 때 바꿔버렸다. 프로 버전이나 고용량으로 사고 싶은 마음은 참았다.
19일 | 식물 가구 특허 출원을 위한 변리사 비용 1,850,000원
창업지원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특허출원을 해내야 했다. 특허 출원을 못 낼까 봐 마음을 많이 졸였는데, 변리사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다. 여름 동안 만든 식물 선반이, 장력을 이용해 화분의 무게에 따라 배치 높이가 달라지는 점을 포인트로 특허 출원이 가능해 보인다고 하셨다. 상표 등록을 포함해 1,850,000원을 지급했다.
19일 | 식물 가구 시제품 5개 제작 비용 5,500,000원
창업지원사업을 주제로 만들었던 식물 가구 시제품 5개를 큰돈 5,500,000원을 지급하고 제작했다. 여러 가지 실험적 결합 방식과 품이 많이 드는 사소한 조치들 때문에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비용이 들었다. 다행히 창업지원 사업 비용으로 통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