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 저축은 안 하는 만 서른 기획자, 남, 30세
한의원 핸드크림 두 개
『문학동네 시인선』 「시인의 말」 모음집
회사에서 사업자 공모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달이다. 공모 특성상 준비 시간이 여유롭지 않고, 여러 회사가 함께 준비하고, 사업자 공모다 보니 숫자나 명칭에 민감해서 재밌게 임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은 아니었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주말까지 일할 만큼 바쁜 건 아니었다. 주말엔 친구들도 보고, 중간중간 문화생활도 했다. 결혼식도 두 건이나 있었다. 10월부터 경조사가 많이 몰려 있다. 어릴 적 친구 중 한 명도 10월 말에 결혼을 했다. 친했던 친구들과 친구들의 어머니들이 다 모였었다. 11월엔 다섯 번의 주말이 있었다. 12월 1일 일요일까지 포함해서, 총 10일이다.
첫째 주
토요일 저녁엔 수원월드컵경기장 쪽으로 결혼식을 다녀왔다. 뒤풀이는 참석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와 강변역 근처 재즈바를 다녀왔다. 조그만 재즈바에서 인테리어 구경을 한참 했다. 보컬이 있는 팀의 공연을 봤다. 일요일 저녁엔 평소에 가보려고 했던 자취방 근처 보현식당이라는 고깃집에서 두부전골을 먹었다.8 가정식 백반집 같은 외관의 가게가 고깃집이라는 게 신기했고, 고깃집 메뉴에 특별 메뉴로 두부전골을 판다는 것도 신기해서 한번 가보려 했었다. 고기 냄새로 가득 찬 식당에서 두부전골을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번엔 고기를 시켜봐야겠다.
둘째 주
오랜만에 방문한 한의원에서 떨어져 가는 핸드크림 두 개를 샀다. 다음번부터는 온라인으로 사게 될 것 같다.
12월 말에 제주도를 갈 생각으로 항공기를 끊었다. 이번엔 변경 및 환불이 용이한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매했다.
셋째 주
아빠 노트북이 고장나서, 동생과 함께 컴퓨터를 사드렸다. 삼성에서 나온 올인원 컴퓨터가 부피도 작고 설치도 간편하여 구매했다.
일요일엔 서울시청 쪽으로 결혼식을 다녀왔다. 신랑 측 선배의 축의금 받는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첫 번째로 받았던, 한 시간이나 미리 도착하신 친구분이 건네주신, 알록달록한 봉투에 쓰여 있던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기억난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깊게 배어 있는 우정이 보였다. 100개가 넘는 축의금 봉투를 받아 종이 가방에 넣었다. 결혼식장에서 제공하는 기본 봉투 외에도 축의금을 미리 준비한 하객분들의 다양한 봉투들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오에 시작된 결혼식은 세 시 가까이에 마무리됐다. 백년가약 국수와 두 번째 디저트를 먹고, 부부와 하객분들과 인사를 하고 파했다. 이날은 근처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 중인 전시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프릳츠에서 ‘아라리오 블랜드’라는 드립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감고당길을 지나 아트선재센터로 향했다.
감고당길엔 버스킹 공연 중인 분들이 두어 분 계셨다. 감고당길이 끝나가는 구간에 계셨던, 그니까 먹쉬돈나와 풍문여고의 중간쯤에 계셨던 분의 노랫소리가 공예박물관에서부터 들렸다.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부르고 계셨다. 좋아하는 노래라 멀리서부터 들렸던 것인가? 가까이서 보니 멜로디언만큼이나 작은 건반을 연주하며 노래하고 계셨다. 코드로 음을 만드는 건반 같아 보였다. 긴 코트와 긴 머리의 남자분이셨다. 끝나버릴지 걱정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들었을 정도로 여유로운 호흡의 창법을 가진 분이셨다. 다음 노래는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였다. 그다음 노래는 카펜터스의 〈Close to you〉였다. 이 노래 또한 긴 노래처럼 느껴졌다. 노래 중간쯤에 다시 아트선재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들었던 곡들을 며칠 동안 반복해 들었다. 앞으로 일요일 오후에 북촌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감고당길로 지나갈 것 같다. 현금이 없어 돈을 드리지는 못했다. 현금을 좀 들고 다닐걸. 일요일 오후 네 시쯤의 사대문 안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네시부터 서도호 전시 관람을 시작했다. 문을 닫는 시간인 일곱 시를 삼 분 남기고 퇴장했다. 서도호 작가의 생각들이 좋다.
날이 쌀쌀해졌다. 일요일 저녁을 기점으로 계절이 변하는 것만 같았다.
넷째 주
토요일 저녁에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룸 넥스트 도어〉를 봤다. 다음번 생일 전에 회원 등록을 어서 해야겠다. 영화를 보고 청진옥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광화문엔 목소리가 큰 사람이 많다. 빠르게 해장국을 먹고 나와 건너편 교보문고를 구경했다. 『문학동네 시인선』 시리즈의 200호 기념으로 발간된 「시인의 말」 모음집을 구입했다. 가격이 무려 3,000원이었다. 아름다운 가격.
일요일엔 자취방 근처의 빵집과 만둣집, 찻집을 방문했다. 한강을 끝으로 멋진 코스가 완성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 가보는 마트에서 종량제 한묶음을 샀다. 10리터짜리는 비닐이 하얗다.
다섯째 주
토요일엔 엄마와 본가 근처 스타필드 위례에 다녀왔다. 무인양품 에서 옷걸이를 사고, 유니클로에서 히트텍을 샀다. 트레이더스에서 우유와 초밥을 사 와서 저녁에 가족끼리 먹었다.
일요일 점심에 가족들과 동생 생일 겸 점심을 먹었다. 처음 가보는 무한리필 샤브샤브 음식점에서 배불리 먹었다. 저녁에는 서울대 도예과 졸업 전시 겸 판매전에 방문했다. 같은 작가의 크기가 다른 화병 두 개를 샀다. 동양화과 졸업 전시도 함께 관람했다. 유석주 작가의 작업이 특히 좋아서 구매를 고민했다. 관람 후 북촌으로 이동하여 〈Ceiling Service〉 공연을 관람했다. 지난번 국립과천과학관에서의 공연이 좋았기에 이번 북촌 미술관에서의 공연도 참여해 봤다. 항상 멋진 공간들을 섭외하여 공연하는 점이 멋있었다. 바닥난방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8천 원이던 도시가스비가 3만 원이 되었다. 온도를 1도씩만 조절할 수 있는 린나이 보일러인데, 0.5도씩 조정할 수 있었던 본가에 비해 스펙이 아쉽다. 1도 단위로 조정해 보면서 최적의 온도를 찾아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