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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걸 알면서도, 너를 마음에 새겼다

소란한 마음들

by 라이트리
사라질 걸 알면서도
너를 마음에 새겼다

- 눈꽃(snowflake) -


눈꽃은 조용히 피어난다. 나무의 앙상한 가지 위에,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간 유리창 모서리에, 그리고 누군가의 어깨 위에. 소리 없이 내려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잠시 머문다.


나는 손을 뻗어 본다. 손끝에 닿자마자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눈꽃.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차가움이 지나가고 나면, 손바닥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사라질 걸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손을 내밀고, 다시 한번 너를 붙잡아 본다.


너와의 기억도 눈꽃과 같았다. 한순간 반짝이며 내 마음속에 내려앉았고, 오래 머물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순간을 새기려 애썼다. 추억이란 건 결국 사라질 운명이지만, 우리는 애써 그것을 품고 살아간다.


햇살이 비치자 눈꽃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걸까? 아니다. 어쩌면 또 다른 형태로, 공기 속에 녹아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마치 우리가 나눈 시간들이 사라진 것 같아도, 어디선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나는 너를 마음에 새겼다. 눈꽃처럼 스르륵 사라질 걸 알면서도, 그것이 내 가슴 한편에 남길 여운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 다시 겨울이 오면, 또다시 눈꽃처럼 피어날 너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 폭설이 내렸다. 마치 너를 마음에 새긴 나를 반가워하듯이.

창밖을 보니 하얀 눈이 끝없이 쏟아진다.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한 눈송이들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손을 뻗으면 스르르 녹아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창문을 열어 손바닥을 내밀어 본다.


그날도 이렇게 눈이 내렸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입김이 하얗게 퍼지는 걸 보며 미소 지었다. 눈을 맞으며 걷던 그 길, 남길 수 없는 발자국처럼, 너와의 시간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눈꽃처럼 내 안에 조용히 쌓여간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늘 내리는 눈이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진다. 마치 너의 온기를 담아 보내는 것처럼.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폭설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마치 너를 마음에 새긴 나를 알아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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