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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건 커피가 아니고 너였다

소란한 마음들

by 라이트리
그리운 건 커피가 아니고 너였다

- 빈잔 -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잔이 어느새 식어 있다. 입술을 적시던 온기가 사라지고, 마지막 한 모금마저 넘긴 후, 텅 빈 잔만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 나는 괜스레 잔을 뒤적이며 손끝으로 쓸쓸한 흔적을 남긴다.


처음엔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쓰디쓴 맛이 혀끝에 남을 때, 그 감각이 무언가를 잊게 해줄 거라고 믿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커피 한 잔을 다 비운 후에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다시 한 잔을 더 주문해볼까, 아니면 그냥 이 빈잔을 바라보며 머물러볼까.


빈 잔을 보고 있자니 문득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늘 마주 앉아 한 모금씩 나눠 마시던 커피. 달디단 라떼와 쓰디 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는 작은 것 하나에도 의견이 다르다며 웃던 기억. 너는 종종 커피가 너무 쓰다고 투덜댔고, 나는 네 잔에서 한 모금 훔쳐 마시며 네 입맛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때는 몰랐다. 네가 있던 자리와 네가 남긴 온기가 얼마나 컸는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빈 잔을 앞에 두고서야 깨닫는다. 내가 비운 건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텅 빈 잔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생각한다. 다시 채워도 사라질 커피처럼, 우리가 나눈 순간들도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고. 그래도 언젠가 다시 마주 앉아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을까? 그때는 이 빈잔이 아닌, 새롭게 채워진 따뜻한 잔을 사이에 두고서.


그러니 오늘은 빈 잔을 채우지 않기로 한다. 이대로 잠시, 너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다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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