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에 고민을 부치는 이유
아-날-로 그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자.
시침과 분침이 나뉜 시계, 줄 이어폰, mp3 플레이어, 자전거, 손 편지, 크래프트 종이 위 번진 잉크 펜으로 쓴 글자들…
나의 기억 속 아날로그란 2000년대 초반을 말한다.
디지털의 반의어는 아날로그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적 의미는 조금 다르다.
아날로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수치를 길이라든가 각도 또는 전류라고 하는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일.
예를 들면, 글자판에 바늘로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수은주의 길이로 온도를 나타내는 온도계 따위를 말한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다시 말해 시계는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시계로 나뉘지만, 편지는 아날로그 편지보단 손 편지라고 하는 편이 맞다.
그럼에도 손 편지를 좋아하고 느리지만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 되게 아날로그 한 거 좋아하는구나!’ 물어보곤 한다.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뜻을 유추하고 마음대로 적용해 사용하는 나의 언어습관은 이렇게 드러나곤 하는데, 이런 미숙함은 숨기고 싶다.
주변 사람이 만류하는 것을 강행하고 처참히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전후 사정을 모르지만 위로해 줄 누군가를 원하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앱스토어에서 ‘익명’ ‘고민’ 키워드가 들어간 앱은 모두 다운받으며 모임 생활 입문을 도운 앱을 만나게 된다.
주변에서 우체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집 주변만 봐도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빨갛고 모서리가 둥근 우체통은 언제 존재했냐는 듯 사라졌다.
‘편지가 잘 전달된 걸까?’ ‘답장이 언제 올까?’
불안과 설렘이 공존하던 손 편지를 보내던 그리움을 모티브로 한 애플리케이션이었는데, 이곳에서 글쓰기 모임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익명을 빌려 부치던 고민을 모르는 사람과 대면 해 나누는 일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 마치 고해성사와 같은 일이었다. 한 달에 두 번 고하는 어리숙한 생각과 미숙한 글은 실패를 감추고 싶지만 꺼내놓고 나아지고 싶은, 양가감정의 종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