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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 시대의 대탈출극

미국에서부터 가족과 함께한 도쿄 여행 시리즈 -5

by 민킴 Mar 27. 2025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앞으로의 일정은 한국에서 약 2주간 양가 어른들을 뵙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웃으며 추억을 쌓는 한국 여행으로 이어지지만, 도쿄에서의 시간이 너무 아쉬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도시가 내게 준 따뜻함과 생기가 자꾸만 마음을 붙잡았다. 


출발 전 마지막 아침, 아이들을 데리고 아사쿠사에 있는 카츠야로 향했다. 문이 7시에 열자마자 들어가 돈까스를 주문했는데, 아침에 돈까스를 먹는다는 게 처음이라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돈까스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니 또 하나의 ‘도쿄스러움’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우리도 천천히 밥을 먹으며 이 순간을 음미했다—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접시를 비웠고, 나는 뜨끈한 미소된장국 한 모금에 여행의 피로와 설렘이 뒤섞인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침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캐리어를 챙겼다.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길은 묘하게 조용했다. 아이들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아내는 살짝 졸며 마지막 도쿄의 공기를 느끼는 듯했다. 공항 라운지에 도착해 간단히 배를 채우고 맥주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톰, 지브리, 건담, 원피스 캐릭터들이 우리를 배웅하듯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그토록 마음껏 즐겼던 일본의 조각들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 느낌이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끝인가?”


일본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휴가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2023년 한여름, 뜨겁고 습했던 도쿄에서 보낸 시간은 내 안의 무기력을 깨우고, 무뎌졌던 감각에 새 숨을 불어넣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틈날 때마다 도쿄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들여다본다. 센소지의 고요한 새벽, 몬자야끼의 뜨거운 불판, 홋피 스트리트의 시끌벅적한 밤, 그리고 나의 2000년대를 소환해준 시부야까—그 모든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을 버텨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어지고 있다.


도쿄는 나에게 새로운 빛깔을 입혀준 곳이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이 제3의 공간에서 발견한 감성은 지난 10년간 일과 육아로 달려온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좀 쉬어가도 괜찮아.” 그 메시지는 작지만 단단했고, 앞으로의 삶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멀어지는 나리타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속으로 말했다.

See you again Tokyo, See you aga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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