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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댁 고양이 Jun 16. 2024

태풍 속 편의점에서 마주친 삶의 하모니

Two is better than one.(다양성)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밤. 심희는 집 근처 편의점에 자리를 잡았다. 딱히 할 일도 없지만 지금은 집에 들어갈 타이밍이 아니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하니까.


없는 용돈을 털어 육개장에 참치김밥을 한 줄 샀다. 기분 같아선 맥주도 한 캔 마시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3천원 나왔다. 


김밥을 전자렌지에 돌리고, 육개장을 뜯는다. 스프를 뿌리다 조금 흘렸다. 손으로 적당히 털어내고 맛을 본다. 짭조름하고 자극적이다.


김밥과 육개장을 챙겨 앉았는데 고개를 두리번 거리다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결국 작은 버드와이저를 한 병 골랐다. 이제 5천원이다. 


비가 오고 있지만 바람이 불진 않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비 맞는 모습을 구경하기 좋은 날이다. 가끔 지나는 트럭들이 인적이 드문 밤 거리를 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아직 연락은 없다. 때가 안 됐다는 의미. 현재는 11시 5분. 아마 30분쯤 지나면 연락이 오리라. 느긋하게 육개장을 음미하기로 한다.




육개장을 한 젓가락 들려고 하는데 남학생이 비를 맞으며 뛰어간다. 


‘지금 집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나는 너랑 달라” 아내 차영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심희는 남자이고 차영은 여자니까. 하지만 그게 다는 분명 아니리라.


또 뭐가 다를까. 심희가 남학생에서 육개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차영은 평소 이성적이지만 화가 나면 감성적으로 변한다. 반면 심희는 보통 감성적이지만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차영은 항상 무언가에 몰두해 있지만, 심희는 대부분의 것들을 적당히 넘긴다. 차영은 정리정돈에 공을 들이지만, 심희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법이 없다. 차영은 치킨과 피자를 좋아하지만, 심희는 보리밥과 순대국밥을 선호한다.


차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고, 심희는 4년제 대학을 8년 만에 마치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갔다. 차영은 20살 때부터 돈을 벌었고, 심희는 30살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니, 이쯤되니 같은 게 있나 싶다. 




심희가 김밥에 든 참치맛을 음미한다.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참치와 김밥은 조합이 참 괜찮다. 그리고 육개장 국물까지 더해지면 그보다 더한 하모니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나보다. 하긴 음식도 재료 나름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직 김치 치킨이나 김치 피자 같은 메뉴를 들어본 기억은 없기에.


‘김치 치킨이 왜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불연듯 ‘있어도 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김치와 치킨은 둘다 ‘자기 주장’이 강한 음식이니까.


어떤 음식에 김치를 넣더라도 음식 앞에는 ‘김치’가 붙는다. 그리고 그런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치킨’이다. 물론 치킨은 뒤에 붙지만. 




심희가 버드와이저를 한 모금 마신다. 늘 마시던 그 맛이다. 스무살 때부터 마셨던 버드와이저는 여전히 건재하다. 


갈색병 위의 빨간 라벨을 감상한다. 어떤 음식이든 잘 어우러지는 이 버드와이저야말로 최고의 파트너가 아닐까.


차영과 결혼한 지 이제 4년째. 이제는 성격을 어느정도 파악해 언제쯤 집에 들어가야 할 지 예상할 수 있다. 


또 차영이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 물론 심희에게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차영에게는 생각보다 흔하다는 것도 말이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뛰어가고 있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차영과 같이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희가 깨달은 게 있다. 차영이 우는 걸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것. 뭐가 그렇게 억울할까 싶어 이유를 물었고, 억울할 일이 아니라는 걸 설명해줘도 소용없었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 


몇 번의 갈등 끝에 심희는 방식을 바꿨다. 설명해주는 대신 그냥 옆에 조용히 앉아있기로.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기다리기로. 그리고 가끔씩 태풍이 몰아치면 피신하기로.


물론 차영은 심희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다. 집에서 나올 때 얘기하고 왔으니까. 대답은 없었지만 말이다.


삶에 지칠 때면 늘 차영을 찾는 심희였기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차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희가 이해하건 못 하건 차영은 시간이 지나면 돌아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김밥과 육개장을 비우고 버드와이저의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셨다. 시계는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직까지 조용한 스마트폰을 뒤로 하고 도리토스 치즈맛을 한 봉투 샀다. 파란 필라이트까지.


그리고 봉투를 뜯으려던 찰나 알람이 울린다. 심희는 필라이트를 반납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비는 여전히 내리지만 우산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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