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들어오는 안부

by 제이미

반짝이풀, 색 도화지, 스티커, 마커펜 등으로 친구들한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것은 국민학교 때 매년 겨울마다 해야 하는 루틴이었다. 카드를 줄 친구들 이름을 적어보고 카드 몇 개를 만들어야 하는지 정한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친구만 줘서는 안 된다. 선생님 그리고 가족들 것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며칠을 걸려 꾸역꾸역 만든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때는 손으로 만드는 정성이 모두가 하는 당연한 것이었다. 만들 때는 힘들어도 친구들한테 나눠 주고 받을 때는 얼마나 신나던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것보다 서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 신났던 기억이 있다. 십 대를 지나 이십 대까지는 예쁘고 특이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찾아 사서 주는 게 유행했었던 거 같다. 카드를 열면 노래가 나오고 유머러스한 글이나 그림이 튀어나오던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카드 말이다. 그런 카드를 잘 골라서 주면 재미있어서 몇 번이나 열어보는 친구와 가족들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인터넷과 이메일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메일로 카드를 보내기도 했지만 한번 열어보고 다시 볼 일이 없는 이메일 카드를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다음은 메신저 그리고 카톡으로 이어져 점점 소식을 전하기는 쉬워졌으나 오래 연락을 안 한 지인한테는 카톡이나 메신저는 너무 뜬금없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이제는 손안에 들어오는 편지나 카드는 끊긴 지 오래다. 솔직히 나도 이제 편지나 카드를 쓰는 게 종이 낭비에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참 아쉽다. 시간을 두고 우편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편지나 카드는 우리에게 기대감을 주고, 받았을 때 기쁨과 감동을 준다. 고민을 하며 적어나간 손편지에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카톡으로는 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과 감정들이 스며있다.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직접 쓰지 않고 받지도 못하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 그 감동을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으로 보내온 남편 지인의 연말 카드

신기하게도 캐나다나 미국에 있는 지인들은 여전히 카드를 주고받는다. 시아버지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쯤 돌아가셔서 시댁에 적지 않은 카드가 쌓였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추모 카드가 많이 와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답장 쓰시는 것을 도와드렸다. 카드를 하나하나 읽고 답장을 쓰시는 모습을 보니 시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달라 보였다. 지금껏 사람들과 정말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오셨구나. 어떤 지인은 여행을 갔는데 시어머니가 생각나서 보낸다고 그곳의 아름다운 모습과 둘만의 추억을 상기하며 카드를 보냈다. 참 인상적이고 부러웠다. 주위에 저렇게 낭만적이고 사랑으로 가득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인이 많다는 것이 부러웠다. 세대가 달라서 그런 걸까. 요즘 잘 보지 못하는 경험을 하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나는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고 그것이 서로가 편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심지어 친한 친구들한테도 정말 가끔 카톡 안부를 보내고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다다. 물론 아이 키우고 자기 일들 하느라 바빠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말 오랜 친구를 제외하고는 크게 신경을 안 쓴다. 카드나 편지를 주고받는 정성과 낭만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간 하나의 안타까운 현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SNS와 여러 플랫폼을 통해 그토록 공감과 연결을 원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손에 쥐어지는 정성과 낭만, 그리고 설레이는 기다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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