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주로 앉아 있어서 나는 일부러 설거지를 쌓아놨다가 (정말 일부러일까) 일어나서 움직일 겸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한다.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체력이 허락한다면 손설거지를 주로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설거지하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손을 움직이는 단순노동을 하며 음악을 듣는 것도 즐겁고 머릿속에서 끊임없는 질문과 생각이 쌓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때도 간혹 있다.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 하지만 익숙한 집에서 설거지할 때와 다른 환경에서의 설거지는 사뭇 다르다.
설거지에도 문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알았다. 한국보다 훨씬 전부터 식기세척기를 쓰기 시작한 서양에서는 손설거지를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설거지의 손놀림이 서투르고 어색하다는 사실을 시어머니를 보고 알았다. 우선 식기세척기의 크기와 성능이 우리 집에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우수하다. 음식에 따라 접시의 형태도 다르니 캐나다 시댁에 가면 주로 납작한 접시가 크기별로 많다. 식기세척기에 넣기도 편하고 음식이 웬만큼 묻어있어도 다 씻겨 나간다. 그만큼 수압도 강하고 수온도 높으며 세제가 좋은지 반짝반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며느리인 나는 부엌 싱크대에 제대로 된 수세미와 고무장갑이 없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처음 몇 번은 있는 대로 했지만 언제부턴가 병세척용 솔과 일회용 장갑을 한국에서 챙겨가고 방문할 때마다 달러스토어에 가서 수세미를 사서 쟁여 놓았다. 1년 후에 다시 가보니 수세미는 없었지만 실리콘 병세척솔은 참 편하다며 여전히 쓰고 계셨다. 우리 가족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젓가락이나 동양식 사기그릇, 아이 플라스틱 용기들이 늘어나면서 손 설거지 할 일도 덩달아 늘어났다. 한마디로 K-며느리 때문에 시어머니도 손설거지를 더 자주 하게 되셨다. 물에 세제를 풀고 수세미로 살짝 문지르고 헹구시는데 제대로 헹구지 않으셔서 내가 다시 헹굴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땐 정말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출산하고 얼마 안 돼서 시부모님께 전기밥솥을 선물해 드렸다. 사실 선물 명분으로 우리가 편하려고 사 드린 거다. 식문화는 각 가정마다 다 다른데 서양도 아닌 동양인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시댁의 부엌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아버지는 한국의 전과 떡국을 좋아하셨다. 오래전 식도암을 앓으신 적 있어서 마른 음식을 잘 못 넘기셔 꼭 소스나 수프를 곁들여 드시곤 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국종류를 갈 때마다 해 드렸다. 그중에서도 떡만둣국은 자극적이지 않고 목 넘김이 부드러우면서 포만감이 있어 가장 좋아하시는 한국 음식이었다.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서 레시피를 알려드리니 우리가 없어도 자주 해 드셨다. 이제 떡국을 끓일 때마다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리워할 것 같다. 주책맞게 울지 말아야지.
아무리 식기세척기가 발전하고 편해도 적어도 나한테는 손설거지가 때로는 생각을 정리하고 때로는 생각을 멈추게 해 주고 또 때로는 아이디어를 가져다주는 하나의 중요한 행위이다. 하지만 귀찮을 때는 한없이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