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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Nov 16. 2023

내가 앉아 있었다_2

잠이 오지 않는다.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던 여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닮았다. 내 옷을 입고 내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항상 반복되는 일상에 데자뷔라도 본 것일까? 더 불쾌한 것은 남은 음식을 몰래 치워먹는 그 모습이 마치 바퀴벌레 같았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서 바퀴벌레 같은 존재일까? 한참 고민 끝에 내일은 음식을 다 치워보기로 하고 알람을 평소보다 일찍 맞춘 후 잠을 청해 본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계란을 삶는다. 이상하게 계란을 삶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먹으면 배를 적당히 채워주는 삶은 계란. 초등 입학하면 선생님들이 꼭 강조하는 것이 아침을 반드시 먹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단백질 섭취는 아이의 두뇌에도 좋다고 하니 계란을 빠지지 않고 먹이려고 한다. 준우도 좋아서 잘 먹는 거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준우는 어릴 때부터 등원 거부가 심했다. 유아 때에 비하면 초등학생인 지금은 학교를 잘 간다. 결혼을 늦게 한 데다 유산을 두 번 반복한 후 어렵게 얻은 우리 준우.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은영 쌤의 프로를 챙겨보고, 시시때때로 나 자신과 아이를 점검하며 제대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계란이 보글보글 끓는다. 아이 깨울 시간이다. 역시 오늘 아침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준우는 또 독서 삼매경이다. 나는 빨리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침착하게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기다려 준다. 내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이가 얼른 먹어야 남은 걸 치울 텐데. 다시 불안해진다. 좋은 엄마는 아침에 아이에게 불안감을 일체 비치면 안 된다. 아이를 위해 언제든 특히 아침에는 긍정적인 에너지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얼굴이 점점 굳어가고 나도 모르게 아이를 빨리 일으켜 세워 옷을 입혀주고 이를 닦여준다. 아이는 나의 거친 손놀림에 인형처럼 움직인다. 식탁 위에 남아 있는 음식을 내 입으로 욱여넣는다. 등교를 하는데 하필이면 아는 친구가 지나가질 않아 할 수 없이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망했다. 다 망했다. 두려운 마음에 바로 집으로 못 들어가고 동네를 삥 돌아본다. 그래도 집에 가긴 가야 하는데. 계속 도망 다닐 수 없으니 용기 내 보기로 한다.     


현관 키 넘버를 누르는데 손이 떨린다. 한번 실패. 다시 침착하게 눌러본다. 아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자유 시간의 시작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반복되는 이 일상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문이 열리고 남의 집 들어가듯 슬금슬금 기어들어간다. 부엌까지 가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가버린다. 준우한테 겁 많다고 핀잔준 게 갑자기 생각난다. 변기에 걸터앉아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일 수도 있지. 문을 열어봐야 정확하게 들릴 것 같은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열고 소리를 들어본다. 뭔가 먹는 소리 같기도 하다. 분명 아침은 내가 먹었는데. 문틈으로 귀를 대고 자세히 들어본다. 말하는 소리다. 말을 한다. 정확하지는 않다. "멍청한.. 멍청한 년이.." 무서워서 오줌을 쌀 것 같다. 하지만 난 들어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꼭 듣고 싶었다. 너무 궁금했다. 온몸의 기운을 귀에 집중해서 들었다. "저 미친년이 또.." 입에 무언가를 가득 물고 말하는 마냥 웅얼거렸다. "미친년이야. 또 다 해주고 지랄이야."   

  

지금 내 욕하는 거야? 내가 잘못했다는 얘기야? 왜 내가 뜨끔한 거야? 왜?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나온다. 순식간에 눈물, 콧물이 솟아 나오고 가슴이 답답해 가슴을 내리친다. 조용히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나가!!! 나가버리라고!! 니딴게 뭘 알아!! 네가 뭘 아냐구.."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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